[김상훈의 포커스온] '괴물 폭우'가 남긴 것
거제·통영, 극한 호우로 초토화
석 달치 비가 사흘 만에 쏟아져
남풍·지형·해수온도 상승 맞물려
폭염·가뭄 뒤 폭우 극단적 현상 잦아
복합재해 대비 관리 체계 구축 시급
특별재난지역 선포 일상 복귀 도와야
지난 15~17일 사흘간 경남 거제에는 928.0㎜, 통영에는 752.8㎜의 ‘괴물 폭우’가 내렸다. 거제와 통영의 평년 여름철(6~8월) 강수량은 각각 935.1㎜와 728.8㎜다. 평년 여름철 석 달치 비가 사흘 만에 쏟아진 것이다. 기상청은 이번 연휴 동안 거제에 내린 비를 통계적으로 ‘200년에 한 번’, 통영에 내린 비를 ‘100년에 한 번’ 나타날 수준의 극한 호우로 분석했다. 거제에는 지난 17일 하루에만 654.3㎜가 쏟아졌다. 1972년 1월 거제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일 강수량 신기록이다. 역대 일 강수량 가운데 거제보다 많은 비가 내린 사례는 2002년 8월 제15호 태풍 ‘루사’ 상륙 당시 강원 강릉(870.5㎜)과 대관령(712.5㎜) 두 곳뿐이다. 17일 새벽 거제에서는 1시간 동안 124.5㎜의 폭우가 쏟아져 종전 1시간 최다 강수량 기록(2001년 7월 5일 96.5㎜)을 크게 넘어섰다. 이날 인접한 통영에서도 시간당 97.4㎜가 내려 종전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처럼 경남 해안에 극한 호우가 집중된 것은 강한 남풍(하층제트), 지형 효과, 높은 해수면 온도라는 세 요인이 동시에 맞물렸기 때문이다. 제13호 태풍 ‘돌핀’이 약해진 뒤 남은 저기압이 한반도 남서쪽에서 북동진하며 남쪽의 고온다습한 공기를 끌어 올렸다. 여기에 한반도 북동쪽에 고기압이 버티면서 저기압과의 간격이 좁아졌고, 두 기압계 사이의 기압 차가 커지자 남풍이 ‘하층제트’라 불리는 강한 바람대로 발달했다. 남해 해수면 온도가 27~28도로 높아 남풍이 실어 나른 수증기의 양도 많았다. 습한 공기가 거제·통영 등 남해안 산지에 부딪혀 위로 들려 올라가면서 빠르게 식고 응결해 비구름이 폭발적으로 발달한 것이다. 또 동쪽 고기압이 벽처럼 막아 비구름이 동쪽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남해안에 정체하면서 좁은 지역 같은 자리에 계속 물 폭탄을 퍼붓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괴물 폭우’는 거제와 통영을 초토화했다. 거제시 옥포동에선 17일 새벽 산사태로 인해 아파트 일부가 매몰돼 인명 피해까지 발생했다. 주택, 농경지, 도로 침수 피해가 잇따르며 아수라장이 됐다. 특히 거제 지역의 피해가 컸던 데는 급격한 도시화를 겪은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거제는 가파른 산지로 이뤄진 곳인데 1970년대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늘자, 산지를 깎는 도심 난개발이 진행됐다. 그 때문에 급경사 주변에 주거지가 형성된 곳이 많다. 도심을 벗어나도 가파른 지형으로 인한 경사지가 많다 보니 폭우가 내리면 상대적으로 저지대와 하천 주변은 침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문제는 기후변화로 극심한 폭염과 가뭄 뒤에 기록적인 폭우가 닥치는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더 잦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장마 공식이 깨지면서 여름철 호우가 광범위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내리는 패턴에서 협소한 지역에 많은 비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장마가 끝난 뒤에도 기습적인 극한 호우가 내리는 사례는 매년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시간당 100㎜ 이상 극한 호우는 총 15번 내렸는데, 이 가운데 12번이 장마 이후에 발생했다.
200년에 한 번 내릴 법한 극한 호우가 ‘뉴노멀’이 된 만큼 기상 예측 시스템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기상청은 지난달 장마 때 강수량을 과다 예측해 ‘과잉 예보’로 질타받았다. 그런데 정작 지난 15~17일 사흘간 경남 남해안 지역에 200㎜ 이상의 비가 내린다고 예보했다. 거제·통영의 실제 강수량보다 훨씬 적게 전망하는 ‘과소 예보’로 대응하면서 재난 대비에 혼선을 불렀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해수면 온도처럼 기상 조건이 빠르게 바뀌고 있어 과거 데이터에 기반을 둔 예보 방식은 예측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상청 레이더 시스템을 고도화·정교화해 강우 빈도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사전 예고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수치 모델의 평균값을 예보하되, 가장 극단적인 예측 수치를 함께 제공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거제·통영의 사례에서 보듯 ‘폭염·가뭄·폭우 복합 재해’가 발생하면 과거 기후 평균값은 의미 없어진다. 복합 재해의 위험성을 새로 평가하고 재해·재난 경보부터 정비해야 한다.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폭염·가뭄·호우 등을 각각 자연 재난으로 규정할 뿐 동시 또는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재난은 별도로 다루지 않는다. 재난 유형별로 관리 체계가 분절돼 있는 것이다. 폭염, 가뭄, 폭우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피해를 키우는 경우가 많은데 단일 재해 대응에 급급한 수준이다. 극한 기후 일상화에 대비하려면 연쇄 복합 재해를 포함한 재난 관리 체계를 새로 구축해야 한다. 정부는 거제·통영에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비롯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피해 주민들이 빠르게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