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1812년 서곡과 '브이 포 벤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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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차이콥스키. 위키미디어 차이콥스키. 위키미디어

1812년 9월, 나폴레옹은 60만 대군을 거느리고 모스크바를 침공하여 겨울이 오기 전에 러시아를 정복하려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모스크바를 불태우고 도망간 후 집요한 게릴라전을 펼쳤다. 이 전략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폐허의 모스크바에서 난생처음 겪는 혹독한 겨울을 맞은 프랑스군은 결국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6만 명만 파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러시아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모스크바에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을 지었고, 성당의 완공 기념식을 위해 차이콥스키에게 짧지만 강력한 관현악곡을 의뢰했다. 그리고 1882년 8월 20일(러시아력 8월 8일) 모스크바 전러시아 산업·예술 박람회의 콘서트홀에서 이폴리트 알타니의 지휘로 ‘1812년 서곡’이 공식 초연되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프랑스 국가와 러시아 국가를 오가며 전쟁의 상황을 전개하다가, 마침내 대포 소리와 교회 종소리가 일제히 울리는 것으로 피날레를 맞는 곡이다.

차이콥스키는 성격상 이런 행사용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 편지에 “아무런 애정없이 쓴 곡”이라고 말할 정도였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인기곡으로 남아 있다. 가끔 실제 총소리나 대포 소리를 섞어서 연주되곤 한다. 전 세계에서 대규모 행사와 함께 연주되곤 하지만 프랑스에서 연주되는 일은 거의 없다. 뭐, 당연하지 않은가. 이탈리아에서 ‘라데츠키 행진곡’을 싫어하는 것과 비슷하다.

차이콥스키-1812서곡 차이콥스키-1812서곡

‘1812년 서곡’은 그 웅장함 때문에 영화에서도 자주 사용되는데, 특히 휴고 위빙과 내털리 포트만이 주연한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었다. 수백 명의 시민이 모두 저항의 상징인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국회의사당으로 모여들고, 마침내 국회의사당이 폭발하는 장면에서 ‘1812년 서곡’이 시원하게 울려 퍼졌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영화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음악에는 영화가 필요로 하는 것들, 사랑과 죽음, 환상과 공포, 긴장과 폭발,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 들으면 잊기 어려운 선율이 있다. 그리고 잘 만든 영화는 거장의 음악을 단지 빌려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에 새로운 기억을 덧씌워준다. 영화와 음악은 이렇게 서로 주고받는다.

영화 속에서 유독 기억나는 대사가 있다. 거사를 앞둔 날, 가이 포크스는 연인에게 춤을 청한다. 연인이 머뭇거리자 그가 말한다. “춤이 없는 혁명이라면, 그건 일으킬 가치도 없는 혁명이야.” 그렇지! 그래서 예술이 소중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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