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심해저에 등장한 두 개의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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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열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

심해저 탐사 규칙은 있는데 개발 단계 없어
유엔해양법협약 밖 일방적 상업 추진 조짐
협상 참여해 환경·거래 다자 체제 주도해야

지난 7월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국제해저기구(ISA) 제31차 회기 두 번째 이사회가 열렸다. 십수 년째 이어지고 있는 심해저 광물 자원 개발 규칙 제정 협상이었다. 세 번째 수정된 개발 규칙 초안을 놓고 주요 쟁점별로 나누어 집중적으로 교섭하였으나 이번에도 규칙은 완성되지 못하였다. 개발 규칙 이행에 필요한 표준과 지침도 상당수가 아직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다.


바다의 헌법이라 불리는 유엔해양법협약은 국가 관할권 밖의 해저와 하층토를 심해저로 정의하고, 심해저와 그 자원을 인류의 공동 유산으로 선언한다. 어느 국가도 이를 독점할 수 없고 개발은 오직 ISA의 규칙과 절차로만 가능하다. 문제는 탐사 규칙은 마련되어 있으나 실제로 광물을 캐내는 단계에 적용할 개발 규칙이 아직 없다는 점이다. 원칙은 선언되어 있는데 그 원칙을 작동시킬 절차가 비어 있는 상태다.

협상이 이어지는 사이 바깥에서는 다른 시계가 돌고 있다. 지난 8월 19일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태평양 바닷속 망간 단괴를 탐사하고 상업적으로 채광하겠다는 신청서가 접수된 사실을 연방 관보에 실었다. 신청자는 캐나다 기업 더 메탈스 컴퍼니(TMC)가 미국에 세운 자회사 TMC USA다. 미국 심해저광물자원개발법에 따른 법정 절차로, 오는 10월 13일 공청회와 10월 19일까지의 의견 수렴이 예정되었음을 공고한 것이었다.

그런데 TMC USA가 탐사와 개발을 하겠다고 신청한 곳은 어느 나라의 바다도 아닌 심해저다. 또한, 미국은 유엔해양법협약 당사국이 아니다. TMC는 나오에로와 통가에 세운 자회사를 통하여 ISA와 탐사 계약을 이행하는 한편, 개발 규칙 제정이 늦어지자 미국 자회사를 통하여 미국 국내법에 따른 개발을 준비하는 이중 전략을 취한 것이다. 다자 체제를 우회하는 이 길이 열린 것을 개발 규칙의 공백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그 공백이 명분을 얹어 주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같은 달 독일 함부르크에서는 또 하나의 장면이 있었다. 국제해양법재판소 해저분쟁재판부가 나오에로와 통가에 설립된 TMC 자회사들이 각각 ISA를 상대로 제기한 사건에서 잠정 조치를 명령하였다. 계약자와 ISA 간 첫 사건이었다. 재판부는 본안 판결에 앞서, 만장일치로 ISA가 적법 절차를 준수하며 탐사 계약 의무의 잠재적 위반 혐의 조사를 계속할 것, 조사 내용을 계약자에게 명확히 알려 합리적 기간 안에 실질적으로 답변할 수 있도록 할 것, 양측 모두 분쟁을 악화시킬 조치를 삼가라고 명령하였다. 이사회는 조사가 진행 중인 그 계약자의 탐사 계약 연장을 승인하였다.

이 장면들은 곱씹어 볼 만하다. 다자 체제를 우회하는 경로를 택한 기업의 자회사가, 정작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하여 그 다자 체제가 만든 법정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심해저에 관한 한 협약과 ISA라는 다자 체제밖에 기댈 규범이 없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동시에 이 사건은 ISA에도 무거운 숙제를 남겼다. 규칙을 집행하려는 기구라면 그 절차부터 법의 지배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규범의 권위는 절차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다.

심해 생태계는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고, 인간 활동의 흔적은 수십 년이 지나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심해저 자원 개발의 유예나 금지를 지지하는 국가가 이번 회기를 거치며 46개국으로 늘어났다. 주목할 것은 이 국가들 역시 협약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방적 개발에는 반대한다는 점이다. 멈출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에 앞서, 이러한 결정이 ISA 안에서 내려져야 한다는 데에는 이미 합의가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ISA를 통하여 심해저에 세 개의 탐사 광구를 확보한 국가이자 개발 규칙 협상에 참여하는 이사국이다. 또한 국내 기업이 TMC의 지분 일부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다른 나라 기업의 일이지만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다. 개발 규칙이 끝내 표류하고 일방주의가 표준이 되어 버리면, 협약을 지키며 준비해 온 쪽이 뒤로 밀리는 역설이 생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심해저 개발이 언제 어떤 조건에서 가능한지를 다자 체제 속에서 정할 수 있도록 협상에 참여하는 일, 그리고 협약에 합치하지 않는 방법으로 채광된 광물이 우리 관할권 안에서 거래되지 않도록 국내 법제를 정비하는 일이다. 또 한 가지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 개발 규칙의 완성은 심해저 개발의 시작이 아니라는 점이다. 환경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심해저 개발은 개시될 수 없다는 원칙이 개발 규칙을 관통해야 한다. 심해저는 인류의 공동 유산이다. 이 원칙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규칙과 절차가 제때 작동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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