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안창홍의 '박제' 연작과 응시의 윤리
안창홍, 눈물 Sorrow 2025'8, 2025. 작가 제공
오는 9월 5일부터 12월 6일까지 미국 워싱턴 D.C. 아메리칸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리게 되는 안창홍의 전시 제목은 ‘안창홍-눈물: 망각된 자들이 우리의 시선을 되돌릴 때’이다. ‘박제’와 ‘실명’ 등으로 구성되는 이 전시는 그가 평생 그려온 망각된 인간과 비인간 생명을 한자리로 불러낸다.
몇 년 전 경기도 외곽의 폐공장 문을 연 순간, 안창홍은 생지옥 같은 광경을 마주했다. 포르말린 냄새가 진동하는 어둠 속에 사슴과 여우, 너구리와 새들이 자빠지고 포개져 있었다. 굵은 밧줄에 감긴 타조는 목과 다리가 부러지고 눈알마저 빠져 있었다. 안창홍은 이 동물들이 인간에 의해 세 번 죽었다고 말한다. 생물학적 죽음, 내장을 들어내고 방부 처리해 전시물로 만든 박제화의 죽음, 상품과 표본으로서의 가치마저 잃은 뒤 폐기된 죽음이 그것이다.
자연사박물관의 박제는 연구와 교육의 표본이었지만, 다른 한편 자연을 포획하고 분류하며 소유하려는 인간중심주의의 산물이자 인간 문명의 잔혹한 자기 초상이다. 안창홍은 폐공장에서 버려진 동물 박제를 사진으로 찍은 뒤, 출력된 사진 위에 물감을 흘리고 뿌리며 붓질을 더했다. 박제의 눈에는 눈물을, 주변에는 노란 나비를 그려 넣었다. 죽어서도 울지 못하는 동물에게 눈물을 돌려주고, 갇힌 영혼을 풀어주는 일종의 제의다.
그의 ‘가족사진’과 ‘아리랑’ 연작에서 이어져 온 ‘사진-회화’가 여기서 새로운 정점에 이른다. 아도르노에게 예술의 ‘미메시스’는 대상의 단순한 모방이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개념적 인식을 넘어 주체가 객체에 동화되고자 하는 행동양식으로 확장된다. 안창홍의 ‘박제’ 연작에서 사진 위의 드리핑과 피눈물은 죽은 생명의 고통을 작품의 형식 안으로 받아들이는 미메시스적 행위다. 이로써 다시 살아나는 동물들은 기억되지 못한 존재자에 대한 미학적 환기이자 윤리적 책임의 기호가 된다.
처음에는 우리가 박제를 바라보지만, 어느 순간 박제된 동물이 우리를 되돌아본다.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관점에서 보자면, 보는 행위는 대상의 되돌아오는 시선에 의해 흔들리고 분열된다. 안창홍의 이번 전시 제목은 그의 예술이 요구하는 ‘보는 행위의 책임’을 정확히 드러내며, 관람자를 윤리적 응시의 자리로 불러낸다.
안창홍은 전쟁과 독재, 산업화와 소비자본주의 속에서 희생된 이름 없는 인간들을 그려왔다. ‘박제’에서 그 시선은 인간에게 착취되고 억압받고 폐기된 비인간 생명으로 확장된다. 그렇지만 안창홍의 ‘박제’ 연작은 동물에 대한 단순한 연민이나 생태적 메시지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박제된 존재를 응시함으로써 인간의 폭력과 문명의 어두운 진실을 직시하게 하는 미학적 고발이자, 억압당하고 배제되고 소외된 모든 생명에 대한 윤리적 애도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