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새로운 집을 위한 실험
이산들 프리랜서
집의 '빈 시간' 지인과 나눴더니
'동네 서재' '공연 숙소'로 활용
집을 매개로 새로운 관계 맺어
개인 독립 지키며 연대도 가능
1인 가구 시대, 집도 바뀌어야
미래의 집, 달라진 삶 품는 공간
“안녕하세요? 이번 주 603호에서 독서 모임을 해도 될까요?” “네, 그럼요. 대신에 화분에 물도 주고 환기도 부탁드려요.”
이번 주 토요일 우리 집을 사용하고 싶다는 지인의 문자다. 우리 집을 이웃에게 열어둔 지 반년, 달력에는 매달 크고 작은 예약이 적힌다.
우리 가족은 엄마와 나, 둘이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줄곧 타지에서 지냈고 부산 본가에는 엄마가 혼자 살았다. 가족 구성원이 떠난 자리에 엄마는 가끔 독서 모임을 열고, 외국인 여행자들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던 올해 초, 엄마가 갑작스럽게 해외에서 일하게 되면서 집이 아예 비게 되었다. 예정된 근무 기간은 2년, 마냥 현관문을 잠가 두기에는 꽤 긴 시간이었다. 고민 끝에 우리는 집을 지인들과 공유해 보기로 했다.
소식을 알리자, 집을 사용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여럿 생겼다. 이들과 함께 ‘603호 관리위원회’라는 이름의 단체 대화방을 만들었다. 집 사용 일정을 공유하고 집안일을 나눴다. 이름은 거창했지만, 규칙은 간단했다. 집을 사용하는 사람은 다음 사용자를 위해 집을 돌보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 집은 다른 이름을 얻었다. 우리 집을 가장 많이 찾는 이들은 엄마의 독서 모임 회원들이다. 예전부터 우리 집에 익숙한 이들은, 창문을 열고 화분에 물을 준 뒤 모임을 연다. 그날의 거실은 동네의 작은 서재가 되었다.
부산 공연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 재일교포 극단의 배우와 스태프도 우리 집 단골손님이다. 작은 극단이 타지에서 공연을 준비하려면 숙소를 마련하는 일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부산에서 공연을 준비할 때면 배우와 스태프는 우리 집에 머물며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한다. 이번 광복절에는 일본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의 삶을 그린 일인극 ‘고픈이’를 부산의 한 소극장에 올렸다. 집 안에 붙여둔 공연 포스터를 본 독서 모임 사람들이 극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호주에 사는 지인도 몇 년 전 우리 집을 방문한 뒤로, 한국에 올 때면 우리 집에 머문다. 그녀의 할머니가 우리 집 근처에 사시는데, 연세가 든 할머니는 집에 누군가와 계속 함께 머무는 것을 힘들어하신다. 그녀는 우리 집에서 지내며 아침이면 할머니 댁에 가서 식사하고, 오후에는 돌아와 자신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 집은 할머니와 손녀가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지낼 수 있도록 이어주는 동네의 곁방이 되었다.
우리 집을 오가는 사람들은 집을 매개로 서로에게, 그리고 동네에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했다. 공간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시도는 호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멜버른 브런즈윅의 ‘나이팅게일 하우징’은 1인 가구도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도록 만든 공동주택 프로젝트다. 산업 쇠퇴로 활력을 잃은 동네에서 집을 투자 대상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 되돌리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입주자는 각자의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할 때 이웃과 만나고 공동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시드니 인근 혼즈비의 ‘빌리지 허브’는 새 시설을 짓는 대신 기존 카페와 주민의 경험을 연결해 모임을 만든다. 하나는 공간을 함께 사용하도록 처음부터 설계한 집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존재하던 사람과 장소가 만날 방법을 설계한 모임이다. 두 사례는 방식은 다르지만, 개인의 독립을 지키면서도 이웃과 연결될 선택지를 열어둔다는 점에서 닮았다.
이에 견주면 우리 집의 변화는 소박하다. 코하우징도 지역 공동체 시설도 아니며, 집의 구조나 소유 방식이 달라진 것도 없다. 다만 우리는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대신 집의 빈 시간을 나눈다. 때때로 집은 동네의 서재가 되다가 공연을 준비하는 숙소가 되고, 다시 할머니와 손녀를 이어주는 곁방이 되기도 한다.
가족의 모습은 계속 달라지는데, 집은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가족의 규모는 작아지고 1인 가구는 늘어나지만, 많은 집은 과거의 가족 형태를 품은 채 남아 있다. 부산에서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7%를 넘어섰으니 열 가구 중 네 가구가 혼자 사는 집이다. 우리 동네에도 1인 시니어 가구가 부쩍 많아졌다. 우리 집 아랫집도, 그 아랫집도 그렇다.
혼자 사는 집이라도 언제나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일 필요는 없다. 어쩌면 미래의 집은 더 편리한 기술과 새로운 구조만큼이나, 달라진 생활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일 수 있다. 이미 있는 집의 쓰임을 새롭게 상상하는 일도 미래의 주거를 준비하는 방법일 것이다. 지금 우리 집은 그 실험을 먼저 해보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머지않아 엄마가 돌아오면 우리 집 역시 1인 가구가 된다. 그때 우리 집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