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방에도 사람이 산다
이현정 경제부 차장
과열된 서울 미분양 심각 지방에 같은 처방
규제 일변도 조치 지방 주택시장 고사 위기
거래절벽에 거주 이전 박탈, 주거 락인 심화
대통령 지지율 하락, 서울 민심만 봐선 안 돼
잘못 돼도 한참 잘못 됐다. 오직 서울의 과열된 집값을 잡겠다며 처방한 해열제를, 미분양이 속출하는 지방 저체온 환자에게도 똑같이 투여하고 있으니. 숨 넘어가기 직전이라고, 이 약을 먹으면 다 죽는다고 아우성을 치는데도 정부의 시선은 여전히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 그래프로만 향해 있다. 지방으로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수도권 과열을 막겠다는 명목으로 시행되는 규제 일변도의 조치들은 자생력이 약한 지방 부동산 시장의 사슬부터 끊어내고 있다. 이 같은 규제의 역설은 지금껏 반복돼 왔고, 지방민은 학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 결과 정부 부동산 대책이 거듭되면 될수록, 자금력 있는 지방민은 너도나도 서울 똘똘한 한 채를 찾아 ‘자본 탈출’을 시도한다.
지난달 23일 열린 대통령 주재 부동산 국민 대토론회와 뒤이어 나온 8·3 부동산 세제개편안은 이러한 수도권 편향적 국정 프레임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토론회에서는 지방에선 넘볼 수조차 없는 30억 원대 주택을 두고 초고가 주택이 맞냐 아니냐 의견이 분분했는데,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고개를 갸웃하며 “지방과 수도권의 초고가 주택 기준에는 큰 차이가 있다”며 서울 사람 편에 섰다. 토론회 내내 국민 절반에 해당하는 지방민은 초대되지 않은 ‘그들만의 세상’에 온 것 같은 불편함과 소외감,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지역 전문가의 발제나 발언 기회도 전혀 없었다.
토론회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세제 개편안에서 ‘지방 무시’는 더욱 노골화됐다. (대개) 서울에 있는 20억 원짜리 거주 1주택자에게는 종합부동산세를 아예 면제해주기로 하고 30억 원까지도 종부세를 줄여주기로 했지만, (대개) 지방에선 주택 3채를 다 합쳐 13억 원만 넘으면 종부세 폭탄을 맞게 됐다. 관련 정부 브리핑에선 한 기자가 지방과의 과세 형평성에 대해 묻자 정부 관계자가 “지방에는 종부세 많이 내는 분이 많이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부산에서만 주택분 종부세를 낸 다주택자가 1만 2205명에 이른다.
무엇보다 정부는 지방의 적체된 미분양 물량을 흡수해 임대 시장에 공급할 유동성의 주체가, 그나마 희망을 가져볼 수 있는 대상이 다주택자라는 점을 간과했다. 결국 지방 주택을 처분하고 서울의 똘똘한 한 채, 안 되면 서울 사람들 눈엔 ‘덜 똘똘한 한 채’라도 갈아타라는 정책적 신호는 지방 부동산 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었다. 정부 발표나 대통령 말 한마디만 나와도 은행 대출 심사가 하루 아침에 뒤바뀌기도 하니 지역 건설업계는 하루하루가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미 부산의 경우 악성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이 역대 최고 수준임은 물론, 악성 미분양 비율이 전체 미분양의 40%를 돌파하는 등 지방 시장은 이미 심각한 동맥경화 상태에 빠져 있다.
정부 지방 무시를 비판하는 본보 보도가 나간 뒤 부산은 물론 경남 창원, 경북 등에서도 본보로 응원과 정부 성토 메일, 전화가 쏟아졌다. 부산의 한 기관 수장은 “부동산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대한민국 서울과 지역의 초양극화가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다”면서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이번 토론회 사례에서 보듯, 서울 사람 눈에는 지역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연일 지역 균형 발전을 강조하고, 2차 공공기관 이전까지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우리가 던져주는 것만 먹어” 식의 시혜적 관점으로만 지방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경고했듯, 시장 실패보다 무서운 건 잘못된 제도 설계로 인한 ‘정부 실패’다. 서울과 수도권 시장이 규제 속에서도 글로벌 자본과 풍부한 대기 수요로 하방 압력을 견뎌내는 사이, 지방은 즉각적인 거래 절벽과 가격 폭락이라는 치명상을 입고 있다.
특히 거래 절벽은 단순 자산 가치 하락의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거주 이전의 자유까지 뿌리째 뒤흔든다. 취업이나 이직, 자녀 교육 등을 위해 거주지를 옮기고 싶어도 집이 팔리지 않아 자신이 살던 지역에 묶여버린다. 평생을 모아 힘겹게 일군 집이라는 자산이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돕는 사다리가 아니라, 발목을 잡는 주거 락인(housing lock-in)의 사슬이 되어버린다.
열이 많이 나 링거를 맞아야 하는 서울보다 더 급한 환자는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지방 시장이다. 국민 절반이 사는 서울 공급 대책이 나올 때, 나머지 국민 절반이 사는 지방 수요 대책도 같이 나와야 한다. 둘은 전혀 다른 시장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이후 또 최저치를 찍었다. 지지율 하락의 원인마저 오로지 부동산 관련 ‘서울 민심’에서만 찾고 있으니, 아직 멀어도 한참 멀었다. 지방에도 사람이 산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