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평화를 디자인하는 부산의 새로운 100년
조정형 한국해양디자인학회 회장
부산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해양도시이자 해양디자인의 중심도시이다. 세계적인 항만과 아름다운 해안, 풍부한 해양문화는 물론 한국전쟁의 역사와 유엔의 정신을 함께 간직한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도시이다. 이제 부산은 산업과 물류 중심의 도시를 넘어 역사와 문화, 평화와 디자인이 융합된 세계적인 해양문화도시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특히, 지난 7월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부산의 미래를 다시 설계할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세계의 전문가들이 부산을 찾은 지금이야말로 도시의 정체성을 역사와 문화, 디자인으로 확장해야 한다. 지난해 기준 부산을 찾은 해외 관광객은 300만 명을 넘어섰으며, 앞으로도 세계인의 방문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이제 부산은 시민뿐 아니라 세계인이 오래 기억하는 명품도시로 변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항 재개발은 단순한 항만개발이 아니라 향후 100년의 부산을 재해석하고 설계하는 국가적 프로젝트라는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부산에는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공원과 유엔평화기념관이 있으며, 국립부경대학교에는 유엔지상군사령부 부속 지휘소(현 워커하우스)가 남아 있다. 이곳은 1950년 9월 6일부터 9월 24일까지 18일 동안 미 제8군 사령부의 지휘본부로 사용되며 낙동강 방어선 작전과 반격을 준비했던 역사적 공간이다.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낸 결단이 이루어진 현장이자, 오늘날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살아 있는 역사교육의 장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시설의 보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원형을 충실히 복원하고 당시의 공간 구조와 기록을 바탕으로 전쟁의 기억을 평화의 가치로 전환하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이다. 당시의 문서와 사진, 작전지도, 구술자료,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콘텐츠를 구축한다면 미래 세대는 단순히 역사를 배우는 것을 넘어 자유와 국제협력의 의미를 직접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공간의 재생은 부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해양문화디자인 모델이 될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여전히 갈등과 무력 충돌을 반복하고 있다. 2022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최근 미국과 이란 간의 군사적 충돌은 평화가 결코 당연한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고 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전쟁의 흔적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평화를 배우고 성찰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유엔지상군사령부 부속 지휘소는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장소를 넘어 미래 세대에게 평화와 국제연대의 가치를 전하는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도시의 경쟁력은 더 이상 초고층 건물이나 경제 규모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역사와 문화, 디자인, 그리고 도시가 품고 있는 철학이 세계인의 기억을 결정한다. 부산은 이미 세계가 인정하는 해양도시이다. 이제는 해양과 평화, 문화와 디자인을 하나의 도시 브랜드로 융합해 세계인이 다시 찾고 오래 기억하는 세계 해양디자인도시이자 세계 평화도시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