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버릴 수 없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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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오래된 물건들을 정리하며
끝까지 버릴 수 없는 것
유예된 꿈과 가능성과 기억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살자고 다짐했었는데, 작은 액자에 끼워놓은 그 글귀가 오히려 스스로를 낯부끄럽게 만들 때가 많다. 특히 이사를 앞두고 물건들을 정리할 때면 더 그렇다. 먼지 쌓인 책들이 겹겹으로 놓인 책장 앞에 서서도, 언제나 카오스 상태인 부엌 서랍장을 열어보는 순간에도, 베란다 창고 속에 유령처럼 머물던 짐 더미들을 꺼내면서도, 이걸 다 어쩌나 싶어 한숨만 푹푹 나온다. 이삿짐들을 일일이 박스에 싸두어야 했던 옛날과는 달리, 요즘이야 업체에서 다 알아서 해주니 그리 힘들 것은 없지만 그래도 대강 정리를 해두지 않으면 쓰레기까지 고스란히 새 집에 옮겨다주기 때문에 그러지 않으려면 미리 품을 좀 들여야 하는 것이다.

우선 책장의 수용 한계를 넘어서버린 책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정기적으로 배송되는 문예지부터 저자들이 보내주는 책들, 내가 글을 발표한 각종 지면들과 출간 도서, 그리고 직접 구매한 책들. 이런저런 이유로 책은 빠르게 늘어나는데 잘 버리지를 못하다보니 책장은 언제나 한계 초과 상태다. 책을 살 때도 무척 고심하지만 버릴 때는 더욱 신중해진다. 꺼냈다가 넣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지 모른다. 아무리 낡았어도 그 시절의 추억이 깃든 책이 있고,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았는데 책장에서 꺼내 표지를 보면 또 읽고 싶어지는 책도 있다. 결국 추리고 추려낸 책들 중에 중고서점에 판매할 수 있는 책은 팔고 지인에게 줄 만한 책은 주고 그럴 수 없는 책들은 재활용 배출일에 내놓으려고 붉은 노끈으로 묶었다. 곧 버려질 책들의 더미를 보니 마치 키우던 생명체를 유기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아 마음이 울적해졌다.

책장 다음으로 시급한 곳은 베란다 창고. 그곳은 아무래도 기묘한 공간이다. 한 평 남짓 되는 좁은 창고에서 뭔가가 끝도 없이 나왔다. 불필요한 물건들 중에 중고거래 사이트에 팔거나 나 나눌 수 있는 것들은 사진을 찍어 올렸다.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쓸 만한 물건들을 쓰레기통에 바로 넣을 수는 없었다. 상태가 좋지 않거나 낡은 물건들을 버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창고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다보면 그것이 환기시키는 과거의 기억에 빠져들 때도 자주 있다. 그러니까 조심해야 한다. 때때로 이런저런 감상에 젖어들었다가 결국 꺼냈던 물건들을 고스란히 그 자리에 돌려놓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쓰지 않지만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 버리지 못하는 것들도 많다. 오래 전에 사놓았던 수첩과 노트들은 여전히 너무 예뻤고 나중에 독서 노트나 필사 노트로 쓰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피리와 태평소도 꺼냈다가 도로 집어넣었다. 관악기에는 소질이 없다는 걸 일찌감치 파악했는데도 아직까지 미련이 남아 있나보다. 공죽, 버나, 저글링 공은 가족들의 반대로 버리지 못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연습을 할 거라고 했다. “나중에 언제?”라고 묻기에는 나부터도 떳떳하지가 않았다. 수채물감과 팔레트, 파스텔 같은 미술 도구들도 다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 하게 될지 모르겠으나 그림그리기는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내가 가진 많은 물건들. 그 중에는 현재 나에게 필요한 것도 있지만, 미래의 어느 날을 상상하게 되거나 어떤 가능성으로 남아 있는 것, 혹은 과거로부터 되살아나는 기억들도 많았다. 잠시 시도했다가 훗날로 유예해 둔 꿈, 희미해진 줄 알았는데 선명히 남아 있는 시간.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이 이미 실패일지도 모르지만, 아직 버릴 수 없는 마음의 한 구석에는 오랜 시간 응축된 사랑이 동그랗게 맺혀 있다. 그 조약돌 같은 마음이 남아 있는 한, 그 무엇도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이 시간을 거슬러 내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 같다. 착각일 수도 희망일 수도 있는 그 마음에 사로잡혀, 오늘도 짐 정리는 지지부진하고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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