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일류(日流)'와 '한류(韓流)'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한류', 아시아인들 소통 고민해야

요즘 우리의 대중문화가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듯이,한때 일본의 대중문화가 그러한 적이 있었다. '한류'에 앞선,그것은 이를테면 '일류'였던 셈이다.

고개를 갸웃거릴 분들을 위해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70,80년대,당국의 금지조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집집마다 특수 안테나를 달고 일본의 방송을 열심히들 봤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스크린','로드쇼' 같은 영화잡지들이,젊은 여성들에게는 '논노'나 '앙앙' 같은 일본의 패션잡지들이 인기였다. 그 시절 유흥가 스피커에서는 심심찮게 '부루라이또 요코하마' 같은 불법복제된 일본의 대중가요가 흘러나왔다. 안방극장에서는 '우주소년 아톰','타이거마스크','밀림의 왕자 레오','요괴인간' 같은 만화영화들이 청소년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지금의 '한류'와 그때의 '일류'에 다른 점이 있다면,문화산업과 연관된 자본의 이동이 얼마나 자유로운가,문화상품의 제조원을 제대로 밝힐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점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류'의 지속 가능성 여부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 문제에 관해 '일류'는 좋은 거울이 된다. 돌이켜보면,'일류'의 생명력은 '일류'를 소비하던 쪽의 기술과 자본,혹은 소비 수준이 '일류'를 생산하는 쪽의 그것을 따라잡거나 비슷해지는 동안까지만 유지된 것 같다. 지금도 일본 대중문화가 수입되긴 하지만,그것은 더 이상 '열광'의 형태로 소비되지는 않는다. '한류'의 생명력도 마찬가지다. 물론 일본이 한국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방식과 중국을 비롯한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의 소비 패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한류'의 지속 가능성을 '자본이나 기술'의 관점,즉 동아시아인들이 한국의 대중문화 상품을 얼마나 많이 소비해 줄 것인가,그것이 한국의 전자제품이나 자동차,휴대폰의 소비에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만 고민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일류'를 통해 일본이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갔는지는 모르지만,자신들의 대중문화로 아시아인들과 소통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70,80년대에 일본의 대중문화를 향한 우리의 동경과 선망이,'일본'에 대한 진정한 이해로 이어진 것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 당시 유통되던 '일류'의 한계였다.

'일류'의 교훈은,'타자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동반하지 않는 문화교류의 한계를 일깨워준다. '일류'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모색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가 고민할 것은 '한류'의 지속 가능성이 아니라,어떤 '한류'로 아시아인들과 소통할 것인가이다. 또한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자 '한류'를 소비하는 아시아인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매주 화요일 연재 중인 '문화비평'란에 한수영 동아대 교수,김정하 한국해양대 교수,조광수 영산대 교수,3인이 새 필진으로 나서 글을 씁니다.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