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면] 비를 피하는 것 이상의 그 무엇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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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집을 짓는 10가지 이유 / 로완 무어

시네롤리엄, 런던, 어셈블 설계, 2010년. 계단 제공

시네롤리엄은 영국 런던 클러큰웰 지역의 오래된 주유소를 개조해 만든 가설극장이다. 학생들이 우리 돈으로 1천100만 원쯤을 모아 지었는데, 주택 공사를 할 때 습기 차단막으로 사용하는 은색의 합성부직포인 타이벡으로 주유소를 둘러싸 관람석을 가린 것이 이채롭다. 영화가 끝나 커튼이 올라가면 관객들은 갑자기 거리 한가운데를 바라보게 되는데, 특별 추가공연(?)인 셈이다. 행인들도 관람객을 보게 되는데, 관객들이 구경꾼에서 구경거리로 전환되었다고나 할까.

올라가는 커튼이 만들어 낸 놀라운 효과로 이 건축은 공연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데, 특히 자발성과 움직임의 건축으로 명명된다. 자동차를 위해 만들어진 장소를 점유하고, 거기에 움직이는 그림을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집을 짓는 10가지 이유 / 로완 무어
시간 속에 '거품' 하나를 만들면서 런던의 변형된 모습을 보게 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흥미롭다.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인 '빌딩(building)'이라는 말이 웅변하듯 모든 건축물은 시간 속에 존재한다. 어떤 건물이 '시간을 초월한다'고 할 때 건축계에서는 영예로운 찬사로 통한다. 인간의 생애를 능가하는, 그래서 여러 세대를 잇는 건물의 능력은 건축의 특별한 힘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건축물은 그것을 지은 사람보다 오래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죽은 자들이 만든 건축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살게 마련이고, 건축은 그래서 죽음과 불멸에 익숙한 것이다.

'우리가 집을 짓는 10가지 이유'는 사람들이 집을 지을 때 단순히 생활 영역을 확보한다는 의미 이상의 수없이 많은 욕망과 감정이 개입한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집은 도구이면서 동시에 상징인데 바람과 비를 피하고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거주의 공간이면서 부와 힘, 위엄과 안식, 안전과 정착, 희망과 아름다움이라는 가치와 정서를 더불어 드러낸다.

책은 섹스와 돈, 희망과 권력, 진실과 상징, 가정과 생활이라는 사람들의 감정과 욕망이 집을 비롯한 건축물에 어떻게 작동하고 반영되고 있는지 흥미진진하게 분석하고 있다. 욕망과 감정은 집을 짓게 하고, 집은 반대로 그런 감정을 경험하게 하며, 이 같은 현상은 모호하다기보다는 건축에서 분명하고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증언한다.

영국의 유명 건축평론가인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에피소드 하나. 한 건축가가 집을 증축하고 싶다는 어느 부부의 초대를 받아 식사하면서 남편과 아내의 의견을 각각 경청했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내린 건축가의 결론은 이렇다. "두 분에게 증축은 필요 없습니다. 그냥 이혼하시는 게 어떨까요?" 로완 무어 지음/이재영 옮김/계단/512쪽/2만 원.

임성원 기자 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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