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배웅] ‘코로나 사망자’ 낙인 씻어낸 ‘우리’의 위로와 공감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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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늦은 배웅 프로젝트

‘늦은 배웅’ 인터랙티브 페이지(bye.busan.com) ‘보고싶은 그대’ 챕터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작별을 빼앗긴 이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늦은 배웅’ 인터랙티브 페이지(bye.busan.com) ‘보고싶은 그대’ 챕터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작별을 빼앗긴 이들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었다. 확진자가 되는 순간, ‘우리’였던 이들은 한순간에 격리 대상인 ‘그들’이 됐다. 확진자가 사망자가 되자 주변인 모두에게 낙인이 찍혔다. 유가족은 숨죽여야 했고, 고인은 딱딱한 숫자 ‘○○번 사망자’로 기록됐다. 누구나 가져야 할 애도의 권리마저 빼앗긴 이들. 더 이상 늦어서는 안 되는 배웅. 지난봄 〈부산일보〉가 ‘늦은배웅-코로나19 사망자 애도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다. 그러고 6개월, 무관심은 공감으로, 편견은 위로로, 혐오는 응원으로 바뀌고 있다.


■ 빼앗기고 또 빼앗기고

치르지 못한 장례. 싸늘하게 식은 주검 앞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삼켜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 시대, 주위를 돌아보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우리네 이웃의 이야기다.

동생을 잃은 한 유가족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슬픔”이라고 했다. ‘어떻게 마음을 잡아야 할까.’ ‘왜 이런 세상이 됐을까.’ 코로나라는 병마는 모든 걸 빼앗아갔다.

“너무 멋지다. 평생 바다에서 늙어라”며 해군복을 입었던 동생을 응원했던 김경숙(63) 씨. 동생 길현(57) 씨는 그 말을 따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6월 인터뷰 기사로 전해진 사연에 애도의 메시지가 쏟아졌고, 경숙 씨는 댓글로 답했다. “밤하늘에 어느 별이 되어 누나를 보는지, 매일 밤 찾아봅니다.”

남편 병화 씨를 잃은 조은희(가명·61) 씨. 평생의 기다림 끝에 마지막 항해를 떠난 남편의 무사 귀환을 기다렸던 아내는 그 바람을 이루지 못했다. “코로나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주변에 알리기도 어렵고, 그냥 시신을 수습해 고향 마을에 묻어드렸다”는 조 씨. 역시 애도의 시간은 없었다.

31주년 결혼기념일 이틀 뒤 확진 판정을 받은 최광윤 씨. 두 딸이 권하는 여행도 마다했던 그는 가족을 두고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버지의 기름 때 잔뜩 낀 손을 기억하는 두 딸은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앞서 아버지와의 이별 과정이 얼마나 많이 ‘생략’됐는지 알게 됐다. “나라에서 주는 1000만 원으로 뭐해요? 차라리 그 돈을 낼 테니 우리 아빠 살려 달라고 하고 싶어요. 저희를 피하지 않고 보듬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커요.” 빼앗긴 이들에게 필요한 채움은 위로다.


■ 위로와 공감, 우리

3개월간 글로 전한 10편의 이야기. 이에 대한 시민들의 응답은 위로와 공감이었다. 남 일이 아닌 우리의 아픔이라는 인식의 변화다. ‘용기 내고 잘 헤쳐 나가시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옆에 계시면 같이 안고 울어 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번 안아 주고 싶다는 말이 너무나 절절합니다.’ 댓글 마디마디 진심이 묻어난다.

‘늦은 배웅’을 통해 6개월간 만났던 유가족, 의료진은 ‘우리’라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은 유가족이 가장 크게 실감한다. “주위 분들로부터 많은 인사가 있었습니다. 진솔하게 애도의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고 강병화 씨 부인)라는 마음이 전해졌다.

열네 번 코로나검사를 받다 끝내 숨진 고 정유엽 군 사연에도 우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모자상을 보니 눈물이 납니다.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서 왜이리 슬픈지...’ ‘부모님의 심정이 얼마나 아프고 힘드셨을지.’ 우리의 목소리가 우리 안의 누구를 보듬고 있다.

30일 문을 연 ‘늦은 배웅’ 인터랙티브 페이지에 올라온 10장의 그림에는 생전 행복했던 고인들 모습이 담겼다.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우리 모습이다. 노래를 좋아했던 아들, 춤을 함께 췄던 어르신의 모습을 추억하는 건 뒤늦게나마 허락된 추모의 한 자락이다. 코로나와 싸우는 또 다른 ‘우리’, 현장 의료진과 장례지도사에게도 코로나로 인한 죽음은 익숙지 않다. 방역지침상 유가족을 막아설 수밖에 없었던 장례지도사에게도 보이지 않는 트라우마가 남았다. 이들은 유가족을 보듬으며 자신을 보듬는다. 국립부곡병원 영남권트라우마센터 김영천 정신건강전문요원은 “유가족이 울음을 터뜨리며 마음을 털어놓을 때 저희들도 상처가 씻겨 나가는 기분이다”고 말한다.

다소 늦은 배웅이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늦은 배웅’ 인터랙티브 페이지(http://bye.busan.com)는 언제든 열려 있다. ‘명복을 빕니다. 애도합니다. 같이 슬퍼합니다.’ 참된 마음이면 충분하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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