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민이 즐겼던 조선의 정물화 ‘책거리’ 보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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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책에 관한 놀라운 예술이 있었다. 바로 책거리(혹은 책가도)다.

책거리는 책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사물을 함께 정물화로 그린 것을 말한다. 서양의 정물화처럼 일상적인 물건이나 꽃을 그린 게 아니라, 책이 중심인 정물화였다. 유독 책을 사랑하고 책 정치까지 펼쳤던 한국 문화를 대변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조선 정조 때 유별난 책 사랑과 유교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펼친 책 정치로 인해 시작됐다. 정조가 책가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자 당시 호사가들이 앞다투어 ‘책가도 병풍’을 집에 설치했다.

부산시립박물관 신수유물 소개
‘책거리, 책과 염원을 담은…’전
2022년 2월 13일까지 전시회
19세기 민화 ‘책거리 병풍’ 3점


다른 나라에서 더러 책을 그린 적은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 200여 년간 만민이 책거리를 즐겼던 나라는 없다. 그래서 책거리는 한국적인 정물화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장르라 할 수 있다. 정물화 가운데 ‘책’이 중심인 정물화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가 없을 정도로 조선의 책거리가 유일하다.

부산시립박물관 부산관 2층 미술실에 가면, 이런 책거리 정물화를 감상할 수 있다. 2022년 2월 13일까지 열리는 부산박물관 소장 신수유물(新收遺物) 소개 ‘책거리, 책과 염원을 담은 정물화’전이다.

책거리는 18세기 후반 궁중 화원을 중심으로 제작되기 시작했다. 초기 책거리는 책장의 책과 문방구를 주로 그려 학문 숭상의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했으나, 진귀한 옛 물건과 서화를 수집·감상하고자 하는 조선 문인들의 욕구가 반영돼 점차 중국 골동품과 도자기가 주요 소재로 자리 잡았다. 19세기 이후부터는 책과 사치품 외에도 부귀·다산·장수·출세 등 ‘복(福)’을 상징하는 갖가지 사물을 더해 현실적 염원을 담은 책거리가 민간에서 유행했다.

이번 전시에는 부산박물관 소장 책거리 병풍 3점이 출품됐다. 전시 작품 모두 19세기 후반의 민화 책거리로 책과 꽃, 각종 사물이 화면 가운데로 집중돼 복잡하면서도 자유분방한 구도를 보여준다.

또한 화려한 비단 책갑(冊匣)을 두른 책과 모란·수박·복숭아 등 ‘복’이나 다산·장수·부귀·출세를 상징하는 각종 사물과 담뱃대·남바위·안경과 같은 일상용품을 함께 그려 현실적 소망을 담아냈다. 왕과 백성이 함께 즐겼던 조선의 회화 ‘책거리’. 부산박물관의 이번 전시는 오롯이 그를 만나는 시간이 될 터이다.

정달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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