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철의 어바웃 시티] 도시문제 해결, 갈등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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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

흔히 도시문제를 의사결정에서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라고 한다. 비교적 정답이 정해져 있는 자연과학이나 공학 문제와 달리 ‘사악하다 또는 짓궂다’라고도 알려진 도시 문제는 객관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해법을 찾기가 어렵다. 이는 사회적 갈등 유발과 갈등 해결 기회를 놓쳐 도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로 귀결되곤 한다.

오랜 국가적 갈등을 유발한 가덕신공항 건설, 아파트 주민의 반대에 직면한 해운대 해상풍력단지 건설, 낙동강 대저대교 건설 등 부산의 다양한 현안이 여러 갈등에 노출돼 있다.

객관적인 해법 어려운 도시 현안
이해관계 충돌로 갈등 유발 잦아
이견 조정하는 관리자 역할 중요

최근 경부선 철도 지하화 사업 논란
지역 여야 대립의 결과물 지적 주목
도시계획 갈등관리 필요성 일깨워


특별법 제정으로 이제는 추진이 한결 나아졌다는 가덕신공항 건설의 경우 특히 수도권의 반대가 집요했다. 수도권 환경단체는 생태·환경문제, 수도권 언론은 공정한 절차 위반과 낮은 효율성 등을 들어 끝까지 반대했다. 이에 비해 지역 내 진영 간 갈등의 최소화는 이에 맞서는 중요한 힘이 되었다. 지역 경제계와 보수 진영은 지역경제 성장, 진보 진영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함께 힘을 모았다.

반면 최근 이슈가 된 해운대 해상풍력단지 건설과 낙동강 대저대교 건설은 또 다른 지점에서 지역 내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전국 대비 낮은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기록하고 있는 부산은 해운대 일대에 해상풍력단지 건설을 추진했다. 해운대 달맞이 지역 일부 주민들은 경관 훼손 등을 내세워 집단으로 반대 의견을 냈다. 전국에서 진행 중인 기존 해상풍력 사업의 경우 어민과의 수용성 문제 해결에만 초점이 맞춰졌는데, 이번처럼 주변 아파트 주민의 반대라는 초유의 갈등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특히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이슈와 결부돼 전국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환경영향평가 거짓·부실 보고서로 촉발된 대저대교 건설 예정 부지의 생태·환경문제는 부산의 자연자원 유산인 낙동강의 가치를 다시 한번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환경단체는 멸종 위기종인 큰고니 등의 서식지와 습지 보호를 내세워 사업 자체의 근본적 재검토나 노선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강서지역 개발과 ‘직장·주거 불일치(Jobs-Housing Mismatch)’로 낙동강 일대의 상시 차량 정체를 겪고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대교 건설을 이해한다. 사업 지체로 인한 지역 주민의 비판적 절규도 새겨들어야 한다. 이런 지역 현안의 경우 부산시의 적극적인 갈등 해결 노력 없이는 한 발짝도 제대로 나아갈 수 없다.

근대 도시문제에서 사회적 갈등은 소위 보수와 진보 논쟁에서 출발한다. 서구에서 도시계획이 제도화된 지 100년이 지나는 동안 보수와 진보 양 진영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도시계획이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는 보수적 관점에서는 재산권 자유를 제한한다고 비판한다. 진보 진영에서는 오히려 도시계획이 자본 착취(축적) 행위에 보조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중도 진영도 정부 역할을 과도하게 강화하고 사회적 다양성을 축소한다는 점을 든다.

신보수주의(자유주의)를 표방했던 1980년대 영국 대처 정부와 미국 레이건 정부 시절엔 정부의 역할 축소를 통해 시장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실현하려 했다. 대표적으로 당시 미·영 정부는 연방 주택프로그램을 급격히 축소해 정부 역할을 제한하고 시장 기능을 강화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난 계획 분야의 현실이다. 연방정부 역할이 축소되면서 오히려 지방정부의 계획적 역할은 폭발적으로 강화되었다. 분야도 주택 이외 마을 설계, 대중교통, 지역경제, 자연재난 등으로 확대됐다.

가장 주목할 점은 도시계획의 새로운 역할로 ‘갈등 관리’가 떠오른 것이다. 중앙정부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나타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등장은 새로운 사회적 갈등을 일으켰다. 동시에 이를 해결하고 관리하는 것이 정부의 주요 역할이 됐다.

최근 부산시에선 도심대개조 일환으로 추진했던 경부선 철도 지하화 사업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과도하게 낮은 비용·편익 분석 결과가 자체 타당성 용역에서 나오면서 국비 사업 진행이 어려워진 것이다. 현재 제기되는 비판 중 가장 아픈 부분은 국비 무산이 지역 내 여야 대립의 결과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도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갈등 관리가 필수 불가결하다. 이 과정에서 분명한 것은 ‘도시의 성장과 발전은 분열이 아닌 협력의 정신에 있다’라는 점이다.

대선 등으로 대립이 극심해지는 요즘, 갈등 해결의 정신을 중시하고 이에 대한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부산의 한층 강화된 갈등 관리 역량은 현재 실타래처럼 엉킨 도시문제 해결은 물론 도시 미래를 구상하는 장기적 역할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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