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상생’으론 ‘균형발전’ 못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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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호 서울정치팀 부장

2022년 대선이 다가오면서 각 당 후보들은 너나할 것 없이 전국을 돌면서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공약을 발표하고, 국가균형발전 정책 비전을 쏟아내고 있다.

지금까지 대선후보들이 내놓은 균형발전 정책들은 좋게 표현하면 ‘상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꿩도 먹고 알도 먹겠다’는 식이어서 과연 지방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긴다.

균형발전 ‘꿩도 먹고 알도 먹기’ 아냐
李·尹의 균형발전은 수도권 눈치 보기
노무현 같은 과단성 없으면 헛물켜기

우리에게 균형발전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균형을 의미한다. 수도권 집중, 수도권 비대화로 인한 불균형이 국민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국가 경쟁력을 좀먹는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균형발전의 핵심이라는 의미다. 쉽게 말해 수도권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비수도권에 더 많은 돈과 자원을 내줘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대선후보들은 균형발전을 위한다면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안을 찾으려니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올 리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8월 당내 경선 때부터 균형발전 공약들을 발표했다. 우선 대통령 제2집무실 설치, 국회 분원 추진, 행정부 추가 이전을 약속했다. 하지만 제2집무실이나 분원을 거론했다는 것은 서울에 있는 기존 시설은 유지한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메가시티로 불리는 초광역권 공약도 제안했지만 거기에 필요한 중앙 정부의 인프라 지원 문제는 뒤로 슬쩍 뺐다. 전국에 5개의 초광역권을 만들기 위해선 각 권역별로 철도, 공항, 대학, 문화시설 등의 인프라가 필요하다. 중앙정부가 초광역 정부에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 심화된다. 이 후보는 지방세 비율을 높여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지만, 이 역시 수도권 지자체의 재정만 배불릴 뿐이다. 이 후보는 또 균형발전 공약에 기본소득을 끼워 넣었다.

최근 호남을 방문해서는 “지역 균형발전의 핵심은 ‘농촌 기본소득’ 도입”이라는 발언도 했다. 기본소득을 주면 돈 없는 지역민도 소비를 할 수 있게 돼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인별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수도권에 집중된 국민 수만큼 수도권에 돌아간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사는 나라에서 기본소득이 균형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가정을 이해하기 힘든 이유다. 이상에서 살펴봤듯 이 후보의 균형발전 공약은 지방을 챙기는 척 하면서 내용적으로는 수도권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수도권 표를 의식하면서도 교묘히 비수도권을 달래는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균형발전 정책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윤 후보는 8일 ‘국가균형발전 완성 결의대회’에 참석해 균형발전의 3대 축으로 △교통 인프라 △재정 자립도 강화 △지역별 산업 지원을 꼽았다. 그러면서 “정부는 모든 지역에 공정한 접근성과 대우를 해주고, 지역 문제는 자치적으로 해결하게 하는 것이 균형발전의 기본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지만 이 후보와 마찬가지로 균형발전의 본질을 고민한 흔적은 없다.

윤 후보의 균형발전 정책을 뒷받침할 국민의힘 균형발전특위에서도 이런 흐름은 반복된다. 경기도 이천이 지역구인 송석준 특위 위원은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위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이 균형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고 밝혔다. 그는 자연보전권역, 특수상황지역, 접경지역, 주한미군 반환공여구역 및 주변지역 등에 첨단산업, 교육, 문화 관련 특화시설을 설치하여 운영할 수 있는 상생협력지구제도를 도입하자는 내용의 수도권정비계획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송 위원은 이를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발전법’이라는 별칭을 붙였지만 내용을 들여다 보면 결국 수도권 저개발지역에 산업시설을 넣자는 이야기다. 결국 윤 후보의 균형발전도 수도권을 철저히 의식하는 ‘무늬만 균형’이 될 가능성이 짙다.

정치인이, 특히 전국 단위 선거를 치러야 할 대선후보 입장에서 균형발전 추진은 엄청난 리스크다. 그걸 감수하지 않으면 일이 꼬이는 법이다. 2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균형발전 정책을 되돌아보자. 노 전 대통령은 행정부처를 세종시로 옮기고, 공공기관들을 비수도권으로 대대적으로 이전시켰다. 수도권 이해당사자들에게 엄청나게 욕 먹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꿋꿋이 추진했다.

이번 대선에서 지역 정책을 기준으로 후보를 선택하려는 유권자들에게 한 가지만 기억하라고 말하고 싶다. ‘수도권과의 상생’이라는 애매한 구호로 균형발전을 약속하는 후보들의 말은 거짓이라는 것이다.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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