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건비 아끼려다… 푸드뱅크 기부식품 매년 10억 원 샜다
일선 지자체의 무책임한 행정으로 저소득층의 복지 최전선을 책임지는 부산지역 푸드뱅크와 푸드마켓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기부를 독려해도 모자랄 구·군청이 사실상 기부 상한선을 정해 놔 매년 최소 10억 원 규모의 기부식품이 부산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유출되는 실정이다.
26일 부산광역푸드뱅크에 따르면 부산에는 구·군마다 1곳의 푸드뱅크와 푸드마켓이 각각 운영되고 있다. 푸드뱅크는 기업이나 개인으로부터 기부받은 쌀, 라면 등 각종 식품을 저소득가정과 사회복지시설에 전달하는 식품나눔은행이다. 운영은 주로 지역의 사회복지시설이 맡고 있다. 또 푸드마켓은 저소득층 등 이용자가 직접 방문해 포인트만큼 필요한 식품을 가져갈 수 있는 편의점 형태의 공간이다.
기부 금액 연간 3억 원 초과 땐
당연 신고 사업장으로 전환 부담
부산시 등 ‘인건비’ 분담 높아져
구·군 예산지원 규모도 ‘쥐꼬리’
저소득층, 매서운 연말연시 보내
지난해 부산지역 16개 구·군 푸드뱅크·마켓에 접수된 기부식품은 82억 4900만 원 규모다. 문제는 최소 10억 원 규모의 기부식품이 부산으로 들어왔다가 타 시·도로 빠져나간다는 사실이다. 개별 푸드뱅크나 푸드마켓이 기부받은 식품의 장부금액이 3억 원을 초과하게 되면 일선 구·군청과 ‘불편한’ 마찰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행 법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임의신고로 운영이 가능한 푸드뱅크·마켓은 연간 3억 원 이상 물품을 받아 제공한 경우 당연신고 사업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럴 경우 사업장마다 전담인력 1명과 보조인력 2명을 두고, 인건비와 운영비 등을 부산시와 구·군청이 분담해 지원해줘야 한다. 물품 관리나 운영 규모가 커지는 만큼 추가 인력을 확보하도록 한 것이다.
보조인력 2명을 사회복무요원 등으로 운영하면, 전담인력 1명의 인건비 등으로 연간 4000만~5000만 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다. 현장에서는 “이 예산을 주기 싫어서 아무리 기부가 많이 들어와도 구·군청이 3억 이하로 제한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현재 당연신고로 전환돼 있는 사업장은 북구와 사하구, 해운대구 3곳에 불과하다.
일선 푸드뱅크·마켓에서 3억 원이 넘는 기부를 꺼리다 보니, 이를 총괄하는 부산광역푸드뱅크는 기부식품을 조절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매년 다른 시·도로 넘어가는 기부식품이 10억 원이 넘는다는 것이다. 기업이나 자영업자가 각 구·군의 푸드뱅크·마켓에 개별적으로 기부하려던 식품을 합하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해 전국의 기부식품 등 제공사업장 예산지원현황을 보면 부산의 경우 구·군이 지원한 금액은 1억 4490만 원에 불과하다. 전국 15개 시·도 가운데 세종과 제주를 제외하면 가장 적은 규모다. 시 부담금은 전국적으로 높은 수준이지만, 시와 구·군의 불균형이 심각하다. 부산의 구·군 보조금은 서울(33억 3900만 원)의 4% 수준이며 인천(14억 원)의 10%에 불과하다.
사실상 기부 상한선이 매겨져 있는 상황이라 5~6년 전만 해도 전국 3위 규모였던 푸드뱅크·마켓 기부물품 실적은 6위 수준으로 뒤처졌다.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고 있는 부산 저소득층은 다른 도시에 비해 더욱 매서운 연말연시를 견뎌야 하는 실정이다.
현장에서는 당연신고 전환 기준인 3억 원을 높여 제도상의 미비점을 보완하자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근본적으로는 구·군청의 의지가 핵심이다. 부산광역푸드뱅크 관계자는 “구·군과 지속적인 관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일선 푸드뱅크·마켓 입장에서는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며 “푸드뱅크·마켓은 비용 대비 효과가 굉장히 큰 사업인 만큼 지자체가 의욕적으로 나서 관련 예산을 편성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