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부산시민과 부산항의 역사적인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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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미 부산컨테이너터미널 영업본부장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을 즐겨 시청한다. 이 프로는 신년 기획 ‘세계사를 바꾼 승부’라는 시리즈를 방영하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동로마 제국 수도로 난공불락의 요새로 꼽힌 콘스탄티노플을 무너뜨린 오스만 튀르크 군주 메흐메트 2세를 주제로 방영했다. 이슬람 제국의 확대를 계획한 젊은 왕이 자본과 기술, 인력을 총동원하고 기지를 발휘해 1000년 이상 서방 기독교 세상의 중심으로서 높고 단단한 3중 성벽을 자랑하던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이다. 하이라이트는 메흐메트 2세의 승리를 이끈 마지막 전투에서 전투 선박이 바다가 아닌 산(언덕)을 넘게 하는 허를 찌르는 전략으로 ‘역사적인 그날’을 이뤄 냈다는 것이다. 전투선이 산을 넘은 이유는 적군이 쇠사슬로 바다쪽 진입로를 원천봉쇄했기 때문이다. 메흐메트 2세는 산을 깎고 베어 낸 나무들 위로 배를 밀고 당기는 방법으로 하룻밤에 총 72척을 이동시켜 역사적인 승리를 거머쥐었다.

역사에 위기를 기회로 바꾼 날 많아
부산항 물류 대란 속 최대 실적 달성
6월 부산신항 6부두 전면 개장 예정
물동량 증대·항만의 지속 성장 기대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지나온 나날 중 인생의 물줄기를 바꾼 결정적인 하루로 어느 날을 꼽겠는가? 물론 평범한 사람들에게 천년의 요새를 무너뜨리는 것과 같은 역사적인 하루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포기할 수 없는 절박함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거나 성과를 낸 기억은 있지 싶다.

그런 일이 부산항에도 존재한다. 2020년 초 해운물류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해운 물동량 감소와 운임 하락을 예측하며 걱정했다. 그런데 해운업은 사상 유례 없는 호황의 연속이다. 현재 컨테이너 운임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서너 배나 올랐다. 반면 수출입 업계는 운임 급등과 선박 부족으로 운송 예약을 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부산항의 경우 야드에 컨테이너가 잔뜩 쌓여 극심한 정체 현상이 생기면서 수출 물량 반입 일정을 제한해 화물을 받을 정도로 몸살을 앓았다. 이 같은 물류 대란 속에서 부산항 각 터미널은 철저한 코로나19 예방수칙 준수와 비상 운영을 통해 24시간 가동에 온 힘을 쏟아야만 했다.

그 결과 부산항은 2021년 역대 최대 물동량인 2270만TEU를 처리하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단순히 선사들의 물동량 증대 노력에 따른 수동적인 성장이라기보다는 부산항의 모든 역량을 모아 코로나19와 물류 대란의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항만의 안정성과 효율성, 경쟁력을 증명한 역사적인 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힘입어 부산항만공사는 올해 부산항 물동량 목표를 전년 대비 3.5% 증가한 2350만TEU로 설정했고, 2030년 3200만TEU 처리를 계획하고 있다. 세계 물동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할지는 논란이 있지만, 부산항과 항만물류산업이 지속 성장을 계획하는 건 매우 고무적이다.

부산항 지속 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오는 4월 신항 6부두가 부분 개장하고 6월 전면 개장에 들어간다. 6부두는 2012년 부산신항 5부두 개장 이후 10년 만에 새로 운영되는 부두이며, 신항 남컨테이너부두의 마지막 단계다. 따라서 6부두 개장은 부산항 역사에 큰 의미를 더하는 ‘역사적인 그날’이 될 것이다. 최근 2년간 코로나19 탓에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항만에도 혁신적인 신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길이 300m 이상의 대형 선박에서 컨테이너를 들어올리고 내리는 대형 크레인을 600m 떨어진 사무실에서 원격 조정하는 게 신기술의 하나다.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외부 트럭이 원격 조정에서 나아가 완전 자동화로 작업되는 기술도 있다. 기술자들이 일일이 현장에서 확인해야 했던 냉동·냉장 컨테이너를 시스템으로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것 역시 새로 도입되는 기술이다. 이러한 신규 장비와 자동화 시스템을 개장 이전에 시뮬레이터로 실제 운영과 동일한 모의 환경에서 충분히 테스트해 볼 수 있다는 것도 기술적인 진보의 성과다.

부산신항 6부두는 이같이 획기적인 신기술들을 도입해 개장하게 된다. 앞서 개장한 부두들보다 짧은 기간에 운영의 안정화를 이룬다면 국내외 선사들이 부산항에서 더 많은 물동량을 처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배후부지나 가덕신공항과 연계하면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에 글로벌 물류기업 유치를 촉진하는 모멘텀도 마련하게 될 것이다. 돌아보면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해운·항만·운송·물류 업계는 기술적인 진보와 함께 물동량 성장세를 유지해 왔다. 부산항은 동북아시아의 물류 허브이자 세계 2위의 환적 물동량을 처리하는 항만이다. 이러한 항만을 가진 부산시민들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부산항과 관련 업계에 애정 어린 관심과 격려를 당부한다. 신항을 앞세운 부산항의 지속적인 성장이 이어질 하루하루는 부산항과 시민들의 '역사적인 그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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