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지심도 동백
정선우(1967~ )
바람은 몇 번이나 다녀간 걸까 찰나라는 말을 삼킨다 섬과 섬 사이에 있던 안개가 전하는 바람을 먹고 해풍 위에서도 그림자는 자라고 있다 붉음에 지쳐 자지러지는 핏빛 모가지는 제 팔 아래 떨어뜨린 생의 환멸이다 붉은 소인이 찍힌 부고다
죽음을 껴안은 파랑의 보폭 위로 다시 피는 후생, 파도는 혀끝에 목숨꽃을 물고 치명을 피워 올린다 불온한 포말이 떠돌고 있다 발설하는 절명, 쓰러지며 반복되는 파도, 파도
동백 촛불이 켜지고 유혹의 표정으로 케이크는 붉어지고 있다 통째로 떨어질 맹세는 벼랑 아래로 뛰어들고 모가지 붉은 탄원은 유품으로 박제되는,
더 이상 울지 않는 섬, 불현듯 사랑은 그 절벽에 이를 것이다
-시집 (2018) 중에서-
선운사 동백을 보고 어느 시인은 실연의 아픔을 노래했지만 경남 거제 일운면의 지심도 동백은 슬픈 역사의 한을 가지고 있다. 지심도의 전략적 위치 때문에 일제시대에는 일본해군사령부가 있었고 해방 당시 일본 해군과 미국 공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었다. 해방 이후 섬 소유권은 진해해군사령부로 넘어오게 되고 한때 주민들은 지세포와 대동마을로 강제 이주당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나무를 함부로 벨 수 없어서 지금의 울창한 산림을 섬 전체가 유지할 수 있게 되며 동백과 함께 기암절벽과 많은 야생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 2016년 국방부에서 거제시로 소유권이 넘어오게 되어 보존과 개발의 갈림길에 서게 된 지심도. 전남 강진의 백련사 동백과 전북 고창의 선운사 동백은 모두 유명 사찰과 함께 있지만 경남 거제도의 지심도 동백은 봄이 되면 섬 전체가 붉은 동백으로 뒤덮힌다. 슬픈 우리의 역사와 함께.
이규열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