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카세트테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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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직사각형에 뚫린 구멍 두 개! 80~90년대를 거쳐 온 사람이면 여자 친구를 위해 좋아하는 곡을 카세트테이프에 하나하나 녹음한 뒤 손글씨로 쓴 분홍색 편지와 함께 선물했던 설렘을 갖고 있다. 일본 가수 노래 카세트테이프를 구하기 위해 학교 야간 자습을 빼먹고, 남포동 왕자극장 뒤편을 배회하기도 했다.

1963년 필립스가 베를린 라디오전자전시회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카세트테이프는 릴 테이프를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도록 작게 만드는 게 목적이었다. 1980년대 소니 워크맨의 등장으로 길거리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하철에서 이어폰 한쪽씩을 귀에 꽂고 카세트테이프 노래를 같이 듣던 연인들의 모습도 아련한 추억이다. MP3와 2007년 스마트폰 보급, 스트리밍 서비스로 카세트테이프는 그 수명을 다했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경험하지 못한 옛것에 열광하는 ‘뉴트로(New+Retro)’ 열풍을 타고 LP판에 이어 좋아하는 노래를 다시 듣기 위해 ‘시익시익~’하면서 되감기 해야 하는 카세트테이프가 부활하고 있다. 카세트테이프는 2014년 상영된 공상과학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주인공이 믹스 테이프 음악을 들으면서 외계인 악당을 폭파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재등장하기 시작했다. 2017년 이후에는 미국 시장에서 매년 10% 이상 매출이 신장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카세트테이프와 플레이어를 찾는 MZ세대가 줄을 잇고 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빌리 아일리시, 존 메이어, 테일러 스위프트, 방탄소년단 등 최고의 음악가들이 카세트테이프로 앨범을 발매하고 있다. 독립 예술가들도 이런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카세트테이프가 부활하면서 신세대는 손가락 끝으로 느끼는 접촉이 아니라, 음악 자체를 손바닥 안에서 소유하는 경험을 처음으로 하고 있다. 무엇이든 빨리빨리 변하는 시대에 카세트테이프의 부활이 과거 노래 한 곡을 녹음하기 위해 라디오를 붙잡고 있던 이들에게는 회상으로, 신세대에게는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과거의 것이지만, 신상품과 같은 새롭고 신선한 재미로 다가오는 셈이다.

3월 9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한민국이 세대, 남녀, 이념 간의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뉴트로 열풍에 힙입어 다시 소환되고 있는 카세트테이프와 그 안에 담긴 노래, 추억이 과거와 현재, 미래로 제각각 단절된 세대와 사람들을 다시 연결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를 고대한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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