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방학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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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정 소설가

내가 생각할 때 긴, 아이들 입장에서는 짧은 방학이 끝나가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외출이 어렵기도 했고 이사 후 교통편이 불편해 나가기가 쉽지 않기도 했다. 삼시 세끼는 늘 악마의 목구멍 같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다시 모여 밥을 먹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다 보면 하루가 허무하게 간다.

둘째는 방학 숙제로 세밀화 그리기를 하는데 개나리를 그렸다고 보여준다. 노란 꽃잎의 색이 선명하지 않아 덧칠을 하라고 말한다. 학습 만화만 잔뜩 읽은 셋째는 독후감으로 쓸 거리가 없다고 징징댄다. 어느 아이들이나 그렇듯 하라고 하는 것은 잘 안 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는다. 그럴 때, 끔찍한 상처도 없이 가끔 육아가 너무 고통스럽다.

매일이 똑같아. 지겨워 죽겠어.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방학 기간의 엄마들과 전화로 하소연을 나눈다. 왜 어른들의 인생에는 방학이 없나 몰라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 내게 방학은 달콤했었나.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우리가 여전히 토요일 아침을 좋아하는 것처럼. 계획 없음, 의무 없음, 강요 없음의 가벼움과 평화가 거기에 있다. 방학 때 나는 자주 친척 집에 보내졌다. 아마 나처럼 아이 셋의 방학을 못 견딘 엄마가 맏딸인 나를 보내 잠시 숨통을 틔웠던 것 같다. 동생들과 나는 말도 못 하게 자주 싸웠다. 서로에게 전쟁과 그 부질없음을 배웠다. 내 동생들과 나는 더 이상 방학을 함께 보내지 않는다. 그건 그걸로 끝인 시절의 일. 더 이상 어른의 일이 아닌. 대신 전화로 함께할 휴가에 대해 말하고 그런 일이 코로나 이후에나 가능할 것에 대해 막연해한다.

가끔 들르는 친정에서 아빠는 인생의 방학을 다시금 맞은 것 같다. 어쩌면 아주 긴 방학. 늙음이 만들어 준 방학. 아빠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보낸다. 갈 때마다 트로트 경연 방송을 보는 것이 신기해서 이 프로는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라고 물은 적이 있다. 아빠는 이미 끝났고 재방송을 보는 거라고 했다. 재방에 재방을 보며 우리나라에 노래 잘하는 사람이 진짜 많다고 하지만 그들이 다 잘 되는 것도 아니라고 하신다. 첫 경연부터 떨어진다고 아쉬워하면 나는 아빠의 인생에 재방이 없음이 아쉽다.

아빠 인생은 긴 휴방 중이다. 이명이 심해져서 한쪽 귀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소통이 어려워 말수도 점점 줄었다. 내가 가도 첫인사와 마지막 인사가 다인 경우가 많다. 모든 게 그의 곁에서 느리고 천천히 흘러간다. 어떤 말들을 애써 붙잡지 않고 굳이 내뱉지 않는다. 욕망도 비난도 사그라드는 중이다. 대신 노래가 그곳에 가득하다. 이 방학을 맞기까지 아빠가 얼마나 열심히 숙제를 했는지 나는 안다. 늘 돈이 들어갈 일이 생겼고 그래서 늘 일을 했다. 우리 셋을 모두 공부시켰고 가정을 이루고 자리 잡기까지 최선을 다해 애썼다. 요즘처럼 부모 원망을 하거나 남의 눈에서 눈물을 빼지도 않았다.

이제 나는 언젠가 올 나의 방학에 대해 생각하고 그전에 내가 해야 할 숙제에 대해 생각한다. 내게 인생의 숙제는 두 가지 같다. 나를 잘 풀어 보는 것, 내 주변 사람들을 잘 풀어 보는 것. 더 욕심을 낸다면 세상을 더 복잡한 문제로 만들지 않는 것. 그것이 앞으로의 내 아이들의 세상에 더 필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매일 대선 뉴스로 나라가 시끄럽다. 밥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 유일한 의무라 교육받았던 여성에게 참정권이 생긴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도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나라에서는 여성들이 투표할 수 없다. 참정권을 얻기 위해 많은 여성들이 오랜 시간 거리에 나서 목소리를 냈다. 나는 그들이 내게 만들어준 문제를 꼼꼼하게 풀어 볼 예정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답에 가깝기를 바라본다. 누구에게나 평화로운 방학 같은 세상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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