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지구에 일자리 있을까” 기후 문제 이렇게 접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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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이제는 감정적으로… / 리베카 헌틀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업화 때문에 기후가 변하고 있고, 이로 인해 더 심각한 재난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머릿속 지식은 일상을 바꾸는 행동으로까지는 잘 이어지지 않는다.

기후변화를 효과적으로 이야기하는 법
과학 근거한 주장만이 설득력 있진 않아
자기 책임 부정·대책 없는 낙관 ‘걸림돌’
10대 소녀들의 ‘감정 호소’ 방식에 주목

2019년 9월, 호주에서는 유례없이 큰 산불로 33명이 죽었고, 야생동물 10억 마리 이상이 숨졌다. 전문가들은 산불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했다.그렇다면 이렇게 큰 재난 이후 사람들은 기후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섰을까. 사람들을 심층 인터뷰해 본 결과는 참담했다. 기후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 참사가 초기에 산불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한 정부 탓일 뿐 자연재해가 아니라며, 오히려 환경론자들이 설치는 바람에 일이 더 커졌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후 재난에도 사람들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움직이려면 대체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기후변화, 이제는 감정적으로 이야기 할 때>를 쓴 호주의 사회과학자 리베카 헌틀리는 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단순한 과학적 사실도 개인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므로, 기후변화는 과학의 문제를 뛰어넘는 사회적 현상이라고 규정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까닭은 이 문제가 우리 내면과 가치관, 정체성, 젠더 감수성, 삶의 목적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헌틀리는 심리학과 사회학, 진화심리학이라는 도구로 기후변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갖가지 감정을 하나하나 깊이 들여다보며,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어떤 메시지가 효과적일지 모색한다.

그레타 툰베리 등 세계 곳곳의 10대 소녀들은 기성세대에게 소리친다. “죽은 행성에는 일자리가 없다.” “배운 이들의 말을 무시할 거면 왜 우리가 학교에 가야 하는가?” 이 아이들은 우리의 수치심을 일깨워 행동을 부추긴다.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아이들의 분노는 정당하다. 때로는 유쾌하기도 하다. 10대 소녀들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또래 친구들은 물론 보수적인 아버지나 길에서 우연히 만난 낯선 이들까지도 설득해 낸다.

헌틀리는 어느 날 아침 시사 뉴스 채널에 나오는 10대 아이들의 기후 시위를 보고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했다고 고백한다. 그 아이들이 손팻말에 적은 말들이 바로 기성세대이자 기득권층인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전까지 헌틀리에게 기후 문제는 지식인으로서 알아야 할 교양이자 지켜야 하는 당위의 문제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기후 시위에 나선 아이들을 본 그날 아침, 갑자기 자신의 문제가 되었다고 밝힌다. 결국 헌틀리를 바꾼 것은 기후학자가 발표한 자료나 정부 간 기후변화 협의체에서 발표한 보고서가 아니었다. 자기 딸아이만큼 어린 10대들의 감정적이고 직관적인 메시지였다.

“10대 소녀들은 기후변화가 개인적이고도 감정적인 문제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오직 과학에 근거한 이성적인 주장만이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를 이야기할 때 과학은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헌틀리는 10대 소녀 기후 운동가들에서부터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기후 소통 전문가, 기후 문제와 관련한 문제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자와 심리학자,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평범한 시민들을 만나며 기후변화를 효과적으로 이야기하는 법을 찾아 나간다.

“이제 나와 다른 사람들, 세상을 나와 다른 관점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과연 어떻게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가 지구 살리기의 핵심 과제다. 이는 과학과 기술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소통하고 행동을 장려하느냐 하는 문제다.”

당장 눈앞의 일들이 시급하니 몇십 년 후에 벌어질 기후 문제는 미뤄 놓고 싶은 마음, 정부나 기업의 책임이 더 크다며 자기 책임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 누군가 나서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대책 없는 낙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비관까지. 이러한 마음들이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더욱이 분리수거나 잘하고 자전거로 통근하면 모든 게 괜찮아지리라는 믿음은 지나친 낙관주의에 뿌리를 뒀다는 비난을 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각자의 감정들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이를 바꿀 계기를 찾아 나서는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헌틀리는 우리가 관심 대상과 기후변화의 연관성을 찾고, 주변 사람들과 기후 문제를 쉼 없이 이야기한다면 분명 사람들을 설득하고 행동으로 이끌 수 있다고 강조한다. 리베카 헌틀리 지음/이민희 옮김/양철북/320쪽/1만 6000원.

천영철 기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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