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훈의 생각의 기척] 로라와 롤러, 참주정과 폭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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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철학자

지금과 같은 추운 겨울철에 실내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해 주는 장비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영어권 국가에서 유학 생활을 해 본 사람들조차 이 장비의 이름을 알고 있는 나 자신이 대견하다는 듯이, 그리고 이 발음이 얼마나 아름다우냐는 듯이 ‘로라’라고 자랑스럽게 불러보는 이 장비는 사실 ‘롤러(roller)’다. 자고로, 바퀴가 있건(롤러 스케이트), 굴대가 있건(도색용 롤러), 구르는 것 자체가 둥글게 생겼건(롤링 스톤스), 구르는(roll) 건 모두 롤러인 것이다.

잘못된 발음·번역 관행 고치기 힘들 듯
잘못된 정치적 입장 바꾸는 것도 지난한 일
민중정-폭군정 기로에 선 대선 유념해야

롤러를 로라라고 발음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단 두 군데. 일본이야 원래 소리를 옮겨 적기에 부족한 언어 체계를 가진 나라이니 ‘클린’이 ‘크린’, ‘플라자’가 ‘프라자’, ‘비닐’이 ‘비니루’로 둔갑하는 건 불가피하다 하겠으나, 발음 기호의 기능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 한글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부족한 일본어식 발음을 따라하는 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글 사용자가 ‘채소’라는 우리말 대신 ‘야채’라는 일본어 단어를 쓰거나, 명료하게 의미가 전달되는 ‘폭군정’ 대신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고 잘못된 번역어이기도 한 ‘참주정’을 쓰는 건 미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거나 습관화된 언어 사용 탓으로 돌릴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로라라고 발음하는 것은 이중의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문제적 발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루에 하나씩 언급해도 일 년을 족히 넘길 테지만, 이번에는 스포츠계의 사례를 하나 들도록 하자. 요즈음 부쩍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여자배구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자주 귀에 들리는 문제적 발음이 있다. “○○팀에서 ‘브로커’ 터치아웃에 대한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였습니다.” 아니 배구 경기장에 웬 브로커?

우리가 ‘블로커(blocker)’를 들어야 할 자리에 ‘브로커(broker)’라는 잘못된 발음을 계속 듣는다면 이 잘못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첫째는 부지불식의 상태에서 문제의 발음을 한 해당 비디오 판독관일 테고, 두 번째로는 이 잘못을 계속해서 인지하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배구협회일 것이고, 세 번째는 문제의 발음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기에 판독관과 마찬가지로 부지불식의 상태에서 문제적 발음을 건성으로 듣고 시정을 요구할 시도조차 하지 않는 배구팬들일 것이다. 같은 이야기를 윤석열의 ‘쩍벌’과 ‘쭉뻗’과 ‘주술 혐의’에 대해서, 그러니까 우리의 정치적 태도와 입장에 대해서도 할 수 있겠다.

브로커가 스포츠계에서도 활약하겠지만 작금의 선거 정국에서는 정치계야말로 다종다양의 정치 브로커가 한몫 두둑하게 챙기는 황금어장일 테다. 누가 알겠는가, 그러다가 어떤 브로커가 나라를 몽땅 챙겨 가거나 말아먹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이러한 대담한 브로커가 될 가장 유력한 후보는 당연히 주술사나 무속인일 테고, 그 다음으로는 이 무속인들과 동업자 관계를 유지하는 일부 사이비 기독교 목사들일 것이다.

발터 베냐민의 짤막한 글 <종교로서의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를 일종의 종교로 볼 수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그가 그렇게 보는 것은 자본주의가 순수하고도 가장 극단적인 ‘제의’로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이 진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제의라고 하는 것이 오늘날의 종교를 규정하는 본질적 요소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의(가죽을 벗긴 소를 바친 것과 같은 제물 희생 의식)는 오히려 ‘기도 의식’ ‘점치기’와 함께 기독교가 ‘이교’(paganism)라고 부르는 비종교의 세 가지 활동에 속하기 때문이다.

종교가 ‘교리’(무엇을 믿을 것인가)와 ‘윤리’(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통해 신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중시한다면, 주술이나 무속과 같은 비종교에게는 신에 대한 명제적 진술이라고 할 교리도, 옳은 믿음과 잘못된 믿음의 구분도, 개인으로든 시민으로든 올바르게 살아야 겠다는 윤리의식은 더더욱 없다. 고대인의 삶에서 윤리가 어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영역이 있었다면, 그것은 철학과 정치의 영역이었다. 반면에 예나 지금이나 주술과 무속의 목표는 단 하나, 주제 넘은, 주체하지 못할 돈과 권력이고, 여기에 정치가 보듬어 안아야 할 윤리, 국가, 공동체, 시민의식 등의 가치는 아예 작동하지 않는다.

잘못된 발음을 고치기가 힘들듯, 잘못된 정치적 입장을 바꾸는 것도 개종만큼이나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제대로 된 민중정(民衆政)의 실현은 연기되거나 좌절되고, 형편없는 인간들의 무지막지한 권력만 난무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미흡하나마 계속 민주공화국에서 살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허울만 민중정이고 속은 검찰폭군정인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가가 판가름 나는 중차대한 선거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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