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칼럼] 지금 부산에 없는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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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희 공모 칼럼니스트

‘얼어 죽어도 아이스’의 줄임말인 ‘얼죽아’는 추운 날씨에도 아이스 음료만 고집하는 것을 뜻한다. 20대까지는 얼죽아에 동참했지만 30대가 되고부터는 겨울에 아이스 음료는 손도 시리고 배도 아파서 멀리하게 됐다. 이제 날이 추우면 몸을 녹여 주는 뜨거운 음료부터 찾곤 한다. 한겨울 카페에서 아이스를 주문하는 것이 젊음의 상징으로 비친다면 패션에는 얼죽코가 있다. ‘얼어 죽어도 코트’의 줄임말인 ‘얼죽코’는 아무리 추워도 패딩이 아닌 맵시 나는 코트를 입으며 스타일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말한다.

겨울이 따뜻한 부산에서는 얼어 죽지 않고도 코트를 입으며 멋쟁이가 될 수 있다. 서울에 대비해 확연하게 눈에 띄는 광경은 투명 스타킹을 착용한 여성들이다. 부산에서는 12월에도 투명 스타킹에 치마 입은 패션을 자주 볼 수 있다. 계절에 상관없이 각선미를 뽐낼 수 있는 건 춥지 않은 겨울 덕분이다. 서울에서는 10월 말이면 검정 스타킹이 등장해 12월부터는 기모 스타킹과 나아가 발열 레깅스를 신고 그 위에 치마 대신 바지를 주로 입는다. 얼죽아와 얼죽코를 외치는 젊은이라도 투명 스타킹은 엄두 내기가 쉽지 않다.

한반도 닥친 한파·폭설에도

부산 겨울은 따뜻하고 포근

여유롭고 온화한 미국 서부

기후 등 부산과 유사점 많아

교육·일자리에서는 차이 커

청년 유인할 대안 고민해야

단연 부산의 포근한 겨울은 축복이다. 매년 심해지는 한파에 시달리며 시베리아가 되어 가는 서울과 비교해 겨울철 부산은 어느 곳보다 살기 좋다. 광안리와 해운대가 북적이는 여름을 성수기라고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북쪽의 추위를 피해 겨울에도 부산을 찾을 것 같다. 특히 코로나 이후로 원격 근무가 확산하면서 일과 휴식을 병행하는 ‘워케이션’ 트렌드가 생겨났다. 부산시는 올해 부산역 바로 옆의 아스티호텔을 워케이션 거점 센터로 구축해 본격적인 부산형 워케이션 활성화 사업을 추진한다.

이런 움직임을 지켜보면 미국의 동부와 서부 관계가 서울과 부산에 나란히 대입된다. 대개 미국 동부 사람들은 날씨 좋은 서부로 떠나 여름휴가를 보내거나 겨울나기를 한다. 동부지역에게 서부는 여유로운 휴양과 온화한 겨울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라면, 서부에게 동부는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그 자체다. 올겨울 눈폭탄 사이클론이 미국 전역을 휩쓸며 쑥대밭을 만들 때에도 서부는 그나마 괜찮았다. 마찬가지로 이번 겨울 한반도를 냉동고로 만든 북극한파와 폭설에도 부산은 평온했다.

부산과 미국 서부는 기후적 매력의 유사성 외에도 여러 지점에서 흥미로운 연결고리가 있다. 예컨대 서부에 할리우드가 있다면 부산 역시 영화의 도시다. 국내 최초의 국제영화제로서 부산국제영화제를 매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영화산업의 인재 양성소인 한국영화아카데미가 부산에 있다. 부산이 이끄는 커피와 원두 산업은 월드바리스타 챔피언을 배출한 모모스커피를 필두로 컴포즈, 더벤티, 텐퍼센트, 블루샥 등 전국권 카페 프랜차이즈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이다. 미국에서도 많은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들이 서부에 고향을 두고 있다. 블루보틀이 샌프란시스코에서 탄생하였고 스타벅스가 캘리포니아주는 아니지만 서부의 시애틀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 해양스포츠를 거의 즐기지 않는 동부와 달리 서부는 여름이면 서핑객들로 붐비는데 서핑하면 또 송정해수욕장을 빼놓을 수 없겠다.

그러나 부산과 미국 서부는 지역의 인구 구성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청년 인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캘리포니아와 달리 부산은 고령화 진행이 심각하다. 자이언츠라는 야구팀 이름마저 사이좋게 공유하는 샌프란시스코와 부산은 어떤 차이로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걸까.

딱 하나만 꼽아야 한다면 스탠퍼드대학교라고 생각한다. 부산에 스탠퍼드가 없다. 실리콘밸리는 최초에 캘리포니아주가 기업 유치를 노력한 덕도 보았지만 무엇보다 그 중심에는 스탠퍼드와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캘리포니아대학교 등 지역의 우수한 대학교와 졸업생들이 있었다. 부산에도 대학교는 많다. 명문 부산대를 비롯해 다수의 지역 대학교가 있고 가까이에 유니스트와 포항공대도 있다. 그러나 부산대의 명성이 예전 같지 않고 지역 인재들은 서울과 수도권으로 떠나간다.

캘리포니아에서 스탠퍼드가 지니는 의미는 각별하다. 전통적으로 미국에서 좋은 대학교라면 동부지역부터 꼽았지만 하버드와 맞먹는 스탠퍼드의 위상과 스탠퍼드가 주도한 창업생태계로 동부 학생들이 오히려 서부로 대학 진학을 희망하게 되었다. 날씨도 화창하고 살기도 좋은 덕에 서부에 정착하는 졸업생이 많아졌고 유학생도 대거 유치하면서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대학 전체가 활기를 띠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청년 세대를 붙잡고 이주와 정착을 결심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동기는 역시 교육과 일자리다. 부산에 스탠퍼드가 등장할 날은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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