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대 강’ 치닫는 한중… “갈등 관리 나서야” 지적도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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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중국대사 발언 도화선
중 외교부, 싱하이밍 대사 두둔
“한미일 공조 강화 불안감” 분석
윤 대통령, 위안스카이에 비유
조태용 “먼저 고개 숙일 일 아냐”
전문가들 “관계 개선 채널 확보”
한중일 정상회의 예정대로 준비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으로 한중 관계가 ‘강 대 강’ 대결로 치닫고 있다.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이 14일 국회에서 싱 대사의 사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으로 한중 관계가 ‘강 대 강’ 대결로 치닫고 있다.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이 14일 국회에서 싱 대사의 사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중 관계가 ‘강 대 강’ 대결로 치달으며 격랑에 휩싸였다.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가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정부의 외교 정책을 겨냥해 던진 발언이 도화선이 됐다. 싱 대사는 “일각에선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데 베팅하고 있는데, 중국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여당은 정상적인 외교관이라면 입에 담을 수 없는 노골적인 내정 간섭이자 협박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하면서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중국 역시 맞대응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거칠어지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 9일 싱 대사를 초치해 최근 발언에 대해 항의했는데 이튿날 중국 정부도 정재호 주중대사를 불러 우려와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는 “한국의 각계각층 인사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이 싱 대사의 직무”라고 두둔했고 관영 매체인 환구시보는 “미국에 베팅하는 것은 급진적인 도박꾼 심리”라며 오히려 싱 대사 발언에 힘을 보탰다.

중국이 이처럼 외교적 무리수를 두는 것은 한미일 공조가 강화되는 데 대한 불안감과 초조함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중 패권 경쟁 격화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더욱 커진 상황에서 한국 내 영향력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싱 대사 발언을 비판한 사실이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싱하이밍 대사의 태도를 보면 외교관으로서 상호 존중이나 우호 증진의 태도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면서 “싱 대사의 부적절한 처신에 우리 국민이 불쾌해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윤 대통령이 싱 대사를 구한말 조선 내정에 간섭한 청나라의 위안스카이에 비유하면서 대통령실의 분위기는 더욱 엄중해졌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14일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싱 대사 발언에 대해 “한중 관계의 건강한 발전에 도움이 안되고 역행하는 그런 일들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다른 관계자도 “한중 관계에 대해서는 기존의 우리 기조를 의연하게 이어갈 것”이라며 “먼저 고개 숙이고 매달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최대 교역국인 두 나라가 경제적 측면은 물론 향후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도 원만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여론이 적지 않다. 양국이 현재의 갈등 국면이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면 봉합 수순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조 안보실장도 “우리 나라 외교안보를 총괄적으로 조정해나가는 자리를 맡고 있는 입장에서 주한 중국대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의 당당함과 국격에 잘 맞지 않는다”고 말을 줄이기도 했다.

그는 연내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해선 “한국이 의장국을 맡을 차례이고 그래서 중국과 일본에 3국 정상회의를 하자고 하는 의향을 전달하고 외교 채널간 협의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으로서는 한중 간에도 건강한 관계 발전을 희망하고 한중일 간의 협의체도 잘 발전시키겠다고 하는 그런 중심 잡힌 의연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교 전문가들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한미일 vs 북중러’ 대결 구도가 갈수록 선명해지고 있지만 중러와의 관계 개선 채널을 확보해 갈등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여야 정치권이 외교 문제를 국내 정치용으로 소비하는 일도 없도록 초당적 대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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