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42.5도, 사람·달걀의 임계점
인간은 무더위에 적응한 덕분에 적자생존의 기회를 얻었다. 털과 가죽 없이도 빙하기는 극복했지만, 여름철 고온은 혹독한 시련이었다. 심부 체온을 37도 안팎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신진대사가 교란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초원의 뙤약볕에서 채집·사냥을 하면서 ‘자동 체온 조절 장치’가 발달했다. 땀을 흘려 체열을 낮추는 냉각 시스템이다. 피부에 200만 개 이상의 땀샘이 생긴 이유다. 유인원보다 10배나 많다. 이 같은 발한 능력은 인류의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최근 극한 폭염은 진화가 선택한 생존 전략을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땀을 흘리고도 수분이 보충되지 않으면 체액이 줄고 혈액은 농축된다. 혈액이 걸쭉해진 데 고온 스트레스가 겹치면 과응고와 혈전 위험이 커진다. 체온이 38.5도를 넘으면 뇌 기능이 떨어지고 몸은 병든 듯 무기력해진다. 열사병은 체온이 40도 안팎 또는 그 이상으로 오르고, 혼란·경련·의식 저하 같은 중추신경계 이상이 동반되면서 생명을 위협한다. 근육을 이루고 호르몬·효소·항체 등으로 기능하는 단백질은 생명 활동을 떠받치는 몸속의 정밀 부품이다. 체내 단백질은 40~45도에서 변성을 일으킨다. 달걀흰자가 열을 받아 하얗게 굳듯, 사람 몸의 단백질도 본래의 구조와 기능을 잃는다.
경남 양산은 지난 2일 42.5도로 치솟아 국내 최고 기록을 깼다. “인도는 발길이 끊기고 차도와 골목에 배달 오토바이만 붐볐다.” 그날 도심의 살풍경이 뉴노멀이 되는 세상은 상상하기도 끔찍하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온열질환 사망자 62%가 80세 이상 고령자다. 하지만 폭염이 건강 취약계층만 노린다고 여기면 오산이다. 위험군은 있지만 누구도 그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상 고온에서는 정상 체질도 발한 기능의 장애에서 예외가 아니다. 상대습도가 높으면 땀 증발이 더디다. 이 원리가 적용된 지표가 습구온도인데, 높을수록 체열 배출이 안 된다. 습구온도 32도는 야외 활동이 위험한 수준이고, 35도는 이론적인 사람의 생존 한계다. 세계 곳곳에서 습구온도 35도가 관측되기 시작했다. 이 밖에 뜨거워진 지구는 개화를 부추겨 연중 꽃가루 알레르기 질환을 일으키고, 오존·자외선 노출, 미생물과 기생충 위협까지 키운다.
역대급 폭염 기록은 매년 경신된다. 기온 상승의 속도는 사람의 적응 능력을 넘어서고 있다. 더 길어지고 더 뜨거워진 여름은 몸이 버티는 임계점을 묻고 있다. 진화의 갈림길에 선 것일까. 미래 세대는 우리 세대가 남긴 이 폭염을 견뎌낼 수 있을까.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