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산업용 전기료 찔끔 인하로 균형발전 취지 살릴 수 있나
부울경 10% 인하에 그쳐 생색용 비판
전력 생산 기여도와 기회비용 반영해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6일 한전 남서울본부에서 공청회를 열고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 설계안을 공개했다. 전국을 4대 권역으로 나눠 원전·재생에너지 등이 밀집된 남부권(경상·전라)은 산업용 전력 전기요금 평균 단가(2025년 기준 kWh당 181.9원)의 10% 수준인 kWh(킬로와트시)당 최대 18원 내린다. 중부권(강원·충청)은 최대 약 15원, 수도권 북부(서울·경기 북부·인천)는 최대 약 10원까지 요금이 인하된다. 전력수요가 밀집한 수도권 남부(서울·경기 남부)는 현재와 요금이 동일하거나 1원 인하로 소폭 조정된다. 결국 비수도권 산업용 전기요금만 찔끔 인하해 생색 내기에 그치고 말았다.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는 2022년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발의되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전력 공급과 수요 지역의 불균형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에너지 분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차등 요금제 도입과 함께 기업들의 수도권 집중을 막아야 한다는 게 법안의 골자였다. 그러나 정부가 올해 주택용을 뺀 산업용 전기에 한해 요금 차등 부과 방침을 정하면서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로 명칭이 바뀌어버렸다. 이번 설계안 역시 지난 12일 공개된 정부안 초안에서 진척된 바가 전혀 없어 부산·울산 등 원전 밀집 지역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지역의 염원을 깡그리 무시한 결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부산과 울산은 2035년 완공 목표인 기장군의 국내 최초 소형모듈원전(SMR)을 포함하면 원전 10기가 가동 또는 추진 중인 세계 최대 원전 밀집 지역이다. 송전 비용과 전력 자립도 외에 원전으로 주민이 감내하는 위험을 고려해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번 정부 설계안이 확정되면 최대 수혜처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다. 펩 4기가 들어설 경우 연간 전기료 절감액이 7000억 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반면 고작 10%의 산업용 전기료 인하로는 부울경에 수도권 기업이 내려올 리도 만무하다. 부울경의 전력 생산 기여도와 위험, 기회비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부울경 주민들은 그동안 원전 밀집으로 인한 안전 불안, 주변 경제 활동 제약 등 숱한 불이익을 감수해 왔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이 포화 상태에 이른 문제도 원전 주변 지역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지역에서 생산한 에너지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의 원칙은 사라지고, 수도권을 위한 ‘전기 공장’으로 전락해 버렸다. 주택용 전기요금 차등제도 제외되면서 지역민들은 실질적인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됐다. 비수도권의 산업용 전기료만 찔금 인하해서는 지역 균형발전의 취지를 살릴 수가 없다. 정부는 실효성 없는 ‘무늬만 차등전기료’에 대한 성난 지역 민심을 반영해 공정한 전기요금 설계에 대한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