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란봉투법 100일, 원·하청 갈등 심화로 현장 혼란 현실화
원청 책임 확대로 노사 모두 불안·불만
지루한 분쟁 예고에도 해결 노력 ‘실종’
울산지노위가 지난 1일 현대차 하청노조의 교섭요구 사실공고 시정신청에 대한 2차 심판회의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해 3차 회의로 미뤘다. 오상민 기자
시행 100일(17일)을 맞은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에 국내 산업계가 폭풍 전야 분위기다. 노동위원회가 빠르게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범위를 확대하면서 재계는 교섭 부담과 경영 불확실성을 우려하며 피 말리는 하루하루를 맞고 있다. 노동계도 더딘 제도 안착 속도에 재계의 버티기, 정부 의지 부족 등을 지적하며 투쟁을 예고했다. 노란봉투법이 산업계를 격한 격랑으로 몰아넣을지,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취지를 살릴 수 있을지 기로에 섰다.
노동위는 여러 우려에도 빠르게 원청에 대한 사용자성 인정 사례를 만들고 있다. 그동안 노사 모두 주시해 온 현대자동차와 한화오션 사건에서도 노동위는 지난 15일 두 원청 기업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단을 내렸다. 울산지방노동위원회는 현대차 구내식당, 경비, 위탁 판매 등을 맡은 10개 하청업체 노조가 현대차와 직접 교섭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중노위도 같은 날 한화오션 급식·세탁 업무를 맡은 협력 업체 노조에 원청과의 교섭권을 인정했다. 재계는 직접 생산 공정이 아닌 급식, 시설 관리, 위탁 판매 등 간접 지원 업무에 대해서도 원청 교섭 의무가 인정될지 노심초사하며 지켜봤으나 기대와는 다른 답을 받아들고는 망연자실 상태다. 기업마다 사정은 달라도 교섭 대상 하청 기업이 수십~수백 개로 늘어날 상황이다.
자동차와 조선 부문 대표 기업 2곳의 상황은 머지 않아 향후 철강, 전자 등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될 공산이 크다. 법 시행 이후 1000곳 넘는 하청노조가 원청 430여 곳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고, 지방노동위원회는 사건 80건 가운데 90% 가까이에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유사한 고민이 사실상 하청을 둔 모든 기업에 던져진 셈이다. 노동계도 제도 안착 속도가 더디다며 불만을 쏟고 있다. 노동위의 광범위한 사용자성 인정에도 실제 협상 테이블에 앉는 원청 기업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모호한 법 규정 등 갈등 장기화 요인도 적지 않다. 한화오션 사건에서 중노위는 중대재해처벌법 등 별개 법안에 의해 져야 하는 법적 의무를 근거로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했는데 이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해석이 분분한 부분으로 재계와 학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하청 노조 교섭 요구를 받은 대부분 기업이 지노위 초심, 중노위 재심을 거쳐 행정소송으로 가는 수순을 밟도록 내모는 이유가 되고 있다. 산업계가 새로운 원·하청 관계 정립 갈피도 잡지 못하는 동안 중재와 소통에 나서야 할 정부 노력의 부재나 법만 던지고 갈등은 외면하는 정치권의 행태는 비난 받을 일이다. 올해를 원청 교섭 원년으로 삼겠다며 하반기 격한 투쟁을 예고한 노동계나 법적 분쟁을 포함한 장기 대응에 나설 태세인 재계가 산업 현장을 떠나지 않을 해법 찾기에 서둘러 지혜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