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임시수도 카우나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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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나스’는 북유럽의 발트 3국 중 하나인 ‘리투아니아’의 제2의 도시다. 우리에겐 낯선 지명이지만, 유럽인들에겐 문화와 예술이 꽃피는 작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특히 2023년 카우나스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도시 브랜드 가치는 한 단계 더 올라갔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명칭은 ‘모더니즘 도시 카우나스: 낙관주의적 건축(1919-1939)’이다. 1919년부터 20년간 카우나스에서 유행한 독특한 건축 양식의 보존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 시기 동안 카우나스는 리투아니아의 임시수도였다.

1918년 리투아니아는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지만, 이듬해 이웃 폴란드와 수도 ‘빌뉴스’ 지역을 놓고 충돌을 벌이다 밀려나게 됐다. 리투아니아는 쫓겨나듯 카우나스에 임시수도를 세웠다. 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이러한 상황은 이어졌다.

그때부터 카우나스의 신축 건물들은 직선 위주의 제국주의적 건축 양식에서 벗어나, 곡선을 강조하며 진취적인 느낌을 주기 시작했다. 모더니즘 형태가 반영된 것이다. 동시에 리투아니아 특유의 전통 문양 등도 더해졌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민족 정체성을 잊지 않고 전진하겠다는 복합적인 메시지가 투영된 것이다. 낙관주의적 건축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새 건축 유행을 만든 주역은 카우나스로 모여든 젊은 건축가들이었다. 건축가들 외에도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이 임시수도에 모여들었다. 트렌디한 카페, 카바레, 극장이 생기며 카우나스는 ‘작은 파리’로 불리기도 했다.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이었지만 동시에 역동적인 문화 에너지가 임시수도에 응집됐다.

카우나스는 지금도 임시수도의 흔적을 보존하고 있다. 남아 있는 낙관주의적 건축물만 6000여 채라고 한다. 문화 도시 이미지를 계속 가꾸어 와, EU가 ‘2022년 유럽 문화 수도’로 카우나스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후 관광객이 급증했다.

6·25전쟁 당시 임시수도였던 부산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정식 등록을 추진 중이다. 카우나스보다 기간은 짧지만, 부산에도 임시수도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아미동 비석 피란 주거지, 부산항 제1부두 등 절박했던 당시 민중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공간들이 흩어져 있다. 다만 그동안 산재한 흔적들을 엮어 의미를 만들고, 이를 기억하려 했던 노력이 부족했다. 부산의 임시수도 흔적들도 카우나스만큼 대우받는 날을 기다려 본다.

김백상 디지털국 부장 k103@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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