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청년이 떠나면 해양수도도 없다
서용철 국립부경대 공과대학 학장 한국지리정보학회 회장
기관·기업 이전, 해양수도 완성 못 해
교육 대전환 인재 생태계 구축 필수
대학, 인재 공급 전진 기지 거듭나야
바다에 IT, AI, 인문학 등 융합 확대
해양수산 특성화로 수도권과 차별화
청년 인재 역량·열정이 도시 경쟁력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은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정책 경쟁의 무대가 되고 있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계기로 해양 관련 공공기관의 추가 이전 논의가 본격화하고, 북극항로 추진본부 출범과 수산진흥공사 설립 추진, 국내 최대 국적 선사인 HMM 본사 이전 논의까지 이어지면서 부산의 해양 정책 지형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금 부산은 글로벌 해양 경제 중심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정책 구상과 인프라 확충의 이면에는 우리가 반드시 짚어 봐야 할 불편한 현실이 있다. 바로 이 해양 산업 생태계를 실제로 운영하고 혁신을 이끌어갈 청년 인재를 충분히 길러내고 있느냐의 문제다. 과연 부산은 그 준비가 되어 있는가.
부산은 이미 대한민국 해양 정책과 연구의 핵심 거점이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국립수산과학원,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국가 해양 정책과 연구를 이끄는 주요 기관들이 부산에 집적돼 있고, 이들 기관은 매년 대규모 연구개발 사업을 통해 고부가가치 전문 인력 수요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있다. 여기에 세계적 수준의 항만과 물류 인프라까지 더하면, 부산은 명실상부한 해양 산업 중심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산업 기반을 뒷받침할 인재는 충분한가. 현재 부산의 해양수산 전문 교육은 국립부경대와 한국해양대, 부산대 등 일부 국립대에 집중되어 있고, 다수의 사립대학과 전문대학은 해양 인재 양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수산 분야는 국립부경대를 제외하면 체계적인 인력 양성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
해양 금융, 해양 로봇, 해양 바이오와 같은 신산업뿐 아니라 스마트 양식, 해양 식품 산업, 항만, 해양물류 등 해양 산업 전반에서 전문 인력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대학들은 여전히 기존 학과 체계에 머무른 채 급변하는 산업 현장의 요구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지역 청년들은 해양 산업에서 미래를 그리지 못한 채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다.
더욱이 수산 분야 인력의 고령화는 이미 위험 수준이다.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수산 산업은 물론 부산 해양 산업 전체의 인력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우리가 참고할 만한 사례는 미국 텍사스의 오스틴이다. 오스틴이 ‘실리콘 힐즈’라는 이름의 세계적 기술 도시로 성장한 배경은 단순한 세제 혜택만이 아니었다. 지역 대학들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강력한 교육 생태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기업이 먼저 와서 인재를 찾은 것이 아니라, 우수한 인재가 있었기에 기업이 자연스럽게 몰려든 것이다.
부산 역시 같은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HMM과 같은 대형 해운기업과 공공기관이 인력 걱정 없이 부산행을 선택하게 하려면, 부산이 전문 인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도시라는 믿음을 먼저 심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대학들의 역할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립대 몇 곳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최근 지적되는 특정 대학 출신 쏠림으로 인한 인력 풀의 경직성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 지역 대학들은 각자의 강점과 해양 산업을 연결하는 융합 교육 모델을 과감히 확대하고, 해양수산 특성화 학과 신설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IT·AI, 공학, 인문학, 경영학 등 다양한 전공이 해양 산업과 연결될 때 수도권 대학과 차별화된 부산만의 독보적인 인재 생태계가 완성된다.
동시에 공공기관과 기업들도 대학 교육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첨단 연구 장비를 학생들과 공유하고, 기업과 기관이 교육 과정 설계에 참여하고 졸업생 채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적 인재 양성 생태계가 구축되면 교육과 산업 현장의 미스매치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대학과 기업, 연구 기관이 인프라를 공동 활용하며 현장 중심 교육을 운영하면 지역 인재와 산업 경쟁력은 동시에 강화된다.
부산은 이미 세계적 수준의 항만과 해양 인프라, 다양한 정책 거버넌스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해양수도의 경쟁력은 건물이나 기관의 숫자가 아니라 그 안에서 미래를 설계하는 청년 인재의 역량과 열정에서 나온다.
지역 대학들이 수동적 대응에서 벗어나 인재 공급의 전진 기지로 거듭나고, 부산시가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을 과감히 펼칠 때 부산은 기업과 인재가 스스로 찾아오는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해양도시가 될 수 있다. 기관과 기업의 이전만으로는 해양수도가 완성되지 않는다. 결국 도시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사람’이며, 교육의 근본적 전환을 통한 인재 생태계 구축이야말로 우리가 완성해야 할 최고의 해양수도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