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강제 격리·귀국 차단… 재일 한센인에 ‘광복’은 없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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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조선인 명부 단독 입수

광복 직전 1944년 기준 517명
일본 요양소 10곳에 수용 확인
1962년엔 716명까지 늘어나
80~90대 21명 현재까지 생존

재일동포 사진작가 고 조근재 씨는 1961년 한센병 요양소에서 동포를 만난 뒤, 20년간 일본 전역의 한센병 요양소에서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1961년 도쿄 타마젠쇼엔에서 만난 한센인 입소자. 일본 국립한센병자료관 제공 재일동포 사진작가 고 조근재 씨는 1961년 한센병 요양소에서 동포를 만난 뒤, 20년간 일본 전역의 한센병 요양소에서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1961년 도쿄 타마젠쇼엔에서 만난 한센인 입소자. 일본 국립한센병자료관 제공
재일동포 사진작가 고 조근재 씨는 1961년 한센병 요양소에서 동포를 만난 뒤, 20년간 일본 전역의 한센병 요양소에서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조선인들끼리 서로 한글을 교육하고 있는 모습. 일본 국립한센병자료관 제공 재일동포 사진작가 고 조근재 씨는 1961년 한센병 요양소에서 동포를 만난 뒤, 20년간 일본 전역의 한센병 요양소에서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조선인들끼리 서로 한글을 교육하고 있는 모습. 일본 국립한센병자료관 제공

일제강점기 당시 우생학을 앞세운 일제에 의해 최소 500명이 넘는 조선인들이 일본 내 한센인 수용소에 강제 격리돼 단종 수술, 낙태 등 인권유린 행위에 노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강제 징용 등으로 일본에 끌려간 조선인들은 인간 이하의 열악한 환경에서 한센병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식민지배로 고향을 떠났던 이들은 강제 격리로 또 한 번 생이별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13일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광복 직전인 1944년 기준 최소 517명의 조선인 한센병 환자가 일본의 한센병 요양소에 격리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에는 전남 소록도가 대표적인 한센병 환자 격리시설이지만, 당시 일본에서는 13곳의 국립 요양소가 있었고 이 가운데 10곳에 조선인이 수용됐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인의 한센병 감염은 우연한 불행이 아니다. 처참하게 드러난 식민 피해의 또 다른 양상이다. 본보 취재진이 규슈 구마모토현 고시시의 한센병 요양소인 ‘기쿠치케이후엔’ 내 조선인 모임 ‘우애회’가 1968년 펴낸 〈우애회 20년사〉를 입수, 회원 93명의 명부를 확인해보니 도일(渡日·일본으로 건너감) 동기를 밝힌 남성 71명 중 54명이 징용, 모집, 군인·군속(군무원) 출신이었다. 해방 이후로도 일본 전역의 요양소에 격리된 조선인들은 증가해 1962년에는 716명에 달했다. 이조차 어디까지나 기록에 남은 숫자일 뿐 실상은 더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생활환경 속에서 한센균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 당시 요양소에는 유독 조선인이 많았다. 조선인의 발병률은 일본인보다 10배 이상 높았다. 일본 국립한센병자료관 김귀분 학예연구원은 “당시 일본 사회에서 조선 출신이 차지하는 비율을 놓고 보면, 한센병 요양소에는 일본인의 10배에 해당하는 비율로 재일조선인이 격리돼 있었다”며 “식민지 지배하의 조선이나, 생계를 위해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올 수밖에 없었던 조선인들은 위생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서 생활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시대 상황과 지배의 책임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 구마모토 소재 한센병 요양소 '기쿠치케이후엔' 내 조선인 단체가 1968년 펴낸 <우애회 20년사> 속 명부의 '도일동기(일본 입국 경우)' 일부. 징용, 모집, 군인, 군속(군무원), 일본생 등으로 기재됐다. 손혜림 기자 hyerimsn@ 일본 구마모토 소재 한센병 요양소 '기쿠치케이후엔' 내 조선인 단체가 1968년 펴낸 <우애회 20년사> 속 명부의 '도일동기(일본 입국 경우)' 일부. 징용, 모집, 군인, 군속(군무원), 일본생 등으로 기재됐다. 손혜림 기자 hyerimsn@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밝았지만, 조선인 한센병 환자들에게는 다른 세상 일에 불과했다. 귀국길에 오르는 가족을 요양소 먼발치서 쳐다보거나, 몰래 도망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1931년부터 한센인의 절대 격리와 멸종을 목표로 시행된 일본의 나예방법에 의해 자유로운 외출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일본의 패전 이후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1946년 1월 연합군최고사령부는 감염을 이유로 일제에 조선인 나환자를 송환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일본의 한센병 강제 격리 정책은 1996년 ‘라이예방법’이 폐지되면서야 공식적으로 해제된다. 한국이 1963년 전염병예방법의 강제 격리 조항을 삭제한 것에 비해 30년 이상 늦었다. 이미 1870년대 한센병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과학적 사실이 밝혀졌고, 1920년대 말 전염성이 매우 낮다는 사실이 전세계에 알려졌으며, 1940년대에는 치료약 ‘프로민’이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조선인 입소자들에게는 다른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다. 수십 년간 요양소에 격리된 이들에게 이미 돌아갈 고향이 없어졌고, 질병보다 무서운 ‘문둥병 환자’라는 낙인만 남았다.

여전히 일본 한센병 요양소 3곳에는 재일 조선인 21명이 살고 있다. 대체로 80~90대로 초고령이다. 한센병 조선인 디아스포라(고향을 떠나게 돼 흩어져 사는 집단)의 끝자락을 기억하는 이들마저 희미해져가고 있다.

구마모토(일본)=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한센병이란

한센병은 한센균에 의해 발병하는 만성감염성 질환으로, 피부와 말초신경에 병변을 일으킨다. 유전되지 않고 전염성이 매우 낮다. 대개 호흡기로 감염된다고 알려져있으며, 감염되더라도 면역력이 약한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병하지 않는다. 약을 먹으면 전염되지 않고 완치가 가능하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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