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 '이란 유물' 영화 행사에…'오디세이' 젠데이아 귀걸이 논란
배우 젠데이아가 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영화 '오디세이' 포토콜 행사에서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 홍보 행사에서 배우 젠데이아가 착용한 금귀걸이가 약 3000년 전 고대 이란 유물을 가공해 만든 장신구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지난 20일 열린 영화 '오디세이' 언론 홍보 행사에서 젠데이아가 착용한 금귀걸이가 1947년 이란 북서부 지비예 유적에서 발견된 ‘지비예 보물’(Ziwiye hoard)의 일부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해당 귀걸이는 런던의 고미술 갤러리 ‘배런 런던’이 2025년 런던 보석상 글렌 스파이로로부터 매입한 것으로, 이번 영화 홍보 행사를 위해 대여됐다. 글렌 스피로가 ‘고대 세계의 재료’ 컬렉션의 일환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그는 고대 이란의 태양 무늬가 새겨진 금장식에 18캐럿 금과 다이아몬드를 더해 현대적인 주얼리로 재탄생시켰다.
그러나 행사 이후 약탈 논란이 있는 고대 이란 유물을 젠데이아가 홍보 행사장에서 착용한 것이 적절했는지를 둘러싸고 비판이 잇따랐다.
배우 젠데이아가 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영화 '오디세이' 포토콜 행사에서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란 출신 미술사학자이자 영국 코톨드연구소 교수인 수잔 바바이는 가디언에 “누구도 ‘이건 좋은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며 “수천 년 된 문화유산을 아름다움과 권력의 상징처럼 연출한 것은 문화적 감수성이 결여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것은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다. 인류의 유산이다"라고 강조했다.
고고학자 애널리스 베어도 역시 "핵심은 젠데이아가 아니라 귀걸이 자체가 약탈당한 고대 유물이라는 사실"이라며 "세계적인 영화 홍보 행사에서 착용되면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문화재 약탈 문제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다"고 지적했다.
1947년 이란 북서부 지비예 유적에서 목동들이 유물을 우연히 발견했지만, 정식 고고학 발굴이 시작되기 전 상당수가 약탈당했다. 이후 1950~1960년대 국제 골동품 시장과 암시장을 거쳐 유럽과 미국 등으로 반출됐으며, 현재는 세계 각국의 박물관과 개인 컬렉션에 흩어져 있다.
당시 유물 상당수가 출토 기록과 발굴 맥락을 잃은 채 해외로 유통되면서 원래 위치와 용도 등을 복원하기 어려워졌고, 현재까지도 반환과 소유권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피터 에드웰 맥쿼리대 역사·고고학 부교수는 "젠데이아가 착용한 물품들은 1940년대 후반 이란 지위예에서 발견된 보물 더미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 보물 더미는 정식 발굴된 것이 아니라 약탈당한 후 개인과 공공 기관으로 흩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는 분명히 심각한 문제"라며 "유물 밀수는 범죄 조직이 관여하는 정교하고 다단계적인 국제 범죄 행위"라고 비판했다.
런던의 이슬람 역사·예술 전문가 지르라르 알리 역시 젠데이아의 귀걸이 착용을 두고 “불쾌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과 이란 간 치열한 분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귀걸이가 등장한 점도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배우 젠데이아가 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영화 '오디세이' 포토콜 행사에서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논란이 커지자, 귀걸이를 대여한 런던의 고미술 갤러리 배런 런던은 성명을 통해 해당 유물이 출처가 확인된 이력을 갖추고 있으며 관련 법규를 준수해 관리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번 대여는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 고대 페르시아 금세공 기술의 뛰어난 예술성을 알리고, 이란의 풍부한 문화·예술·역사적 유산을 더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고학계에서는 합법적인 소유 여부와 별개로, 약탈의 역사를 지닌 문화재를 레드카펫의 패션 소품으로 소비한 것 자체가 윤리적 문제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지비예 보물은 고대 이란 철기시대 예술을 대표하는 유물군으로 꼽힌다. 기원전 9~7세기 무렵 제작된 금·은 장신구, 청동기, 상아 조각, 의식용 장식품 등이 대거 출토됐다. 당시 메디아, 스키타이, 아시리아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 자료다. 특히 황금 장식판과 동물 문양 장신구들은 고대 페르시아 금속공예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며, 현재 루브르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세계 주요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류선지 부산닷컴 기자 s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