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수본, 중앙선관위 등 압수수색…'선거 통계 조작' 수사 착수
투표용지 부족 사태 진상 규명을 위한 검경 합동수사본부 관계자들이 23일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압수수색을 위해 들어오고 있다. 합수본은 앞서 투표지 부족 사태 수사 과정에서 선관위 실무자급 직원들이 투표자 수 오입력 실수를 은폐하기 위해 전산상 통계 수치를 임의로 수정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진상 규명을 위한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선관위 실무자들의 통계 조작 정황을 포착하고 강제수사에 나섰다.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를 실무자급 직원들이 ‘주먹구구식’으로 고쳐 은폐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불거진 선관위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국민참정권 침해 진상규명을 위한 검경 합동수사본부(본부장 김태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23일 오전부터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관위와 송파구·강남구·서초구 선관위 등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공전자기록위작 및 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가 기재됐다.
합수본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중앙선관위, 경기도 선관위 관계자들의 투표율 허위 입력 정황을 발견하고 이들에 대한 압수수색도 함께 진행 중이다”고 밝혔다.
합수본은 지역 투표소 관리를 담당한 선관위 실무자급 직원들이 투표자 수 오입력 실수를 은폐하기 위해 전산상 통계 수치를 임의로 수정한 정황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입력 발생 시 상부에 보고하고, 결재를 받아 수치를 수정해야 하는 절차를 무시한 채 실무자가 임의로 숫자를 바꾸는 방식으로 통계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선관위 선거 통계 시스템에 대한 조작 정황이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앙선관위는 그동안 사전투표와 본투표 당일 1시간 단위로 전국 투표소의 투표자 수를 집계해 투표율을 공개해 왔다.
우선 전국 투표소별로 투표관리관이 투표자 수를 전화 등으로 보고하면 읍·면·동 위원회가 누적 투표자 수를 선거 관리 시스템에 입력한다. 이후 구·시·군 위원회에 현황이 보고되고, 시도 위원회와 중앙선관위에서도 이를 확인하는 구조다. 특정 투표소에서 투표자 숫자를 오입력한 경우 수정 지시를 거쳐 재승인 후 수치를 수정해야 한다.
그러나 선관위 직원들은 보고나 승인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시스템을 임의 조작해 투표자 수를 다른 지역 투표소로 분산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시간이 지나면 투표자 수가 늘어나 수치가 맞춰질 것을 노리고 실무자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수치를 조정한 것이다.
예컨대 한 투표소에서 투표자 수 100명을 1000명으로 잘못 입력한 경우, 이를 다른 투표소 9곳에 100명씩 분산시킨 뒤 시간이 지날수록 투표자가 늘어나면 오차를 좁혀나가는 방식이다.
선관위 직원들은 내부 메신저를 통해 투표자 수 오입력을 보고하지 말고 임의 조정하자는 취지의 대화를 나누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금까지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관위 직원들의 관리 부실 또는 직무 태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고의성 여부에 따라 선관위 관계자들이 직무유기 등 혐의로 처벌되거나, 단순 징계에 그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단순 과실의 수준을 넘어선 의도적인 범법 행위에 해당하는 투표 통계 조작 정황이 확인되면서 사안의 중대성이 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관위 실무 직원들이 손쉽게 통계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었던 만큼 투표율 통계뿐 아니라 다른 통계나 전산의 조작 가능성도 열려 있어 사건이 확대될 여지도 크다.
합수본은 이날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짬짜미’ 조작이 어느 범위까지 광범위하게 이뤄졌는지, 과거 선거에서도 전산 조작 사례가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