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수도권 과밀화의 폐해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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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거푸 ‘참사’ 겪고도 흩어지지 않는다면 진짜 ‘재난’이다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서울의 지하철 강남역 승강장이 퇴근길 시민들로 극심한 혼잡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서울의 지하철 강남역 승강장이 퇴근길 시민들로 극심한 혼잡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이달 9일 정부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또다시 급증세를 보이자 7차 유행이 본격화했다고 공식 선언했다. 지난 14일 두 달 만에 7만 명을 넘어선 하루 신규 확진자 가운데 서울과 인천·경기 등 수도권 비중이 55.6%나 된다. 지난달 29일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희생자가 16일까지 158명(부상 196명)으로 늘어나 추모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12일 수도권에는 3시간가량 내린 50mm의 비에 쓸린 낙엽 더미가 배수구를 막는 바람에 침수된 곳이 속출했다. 수도권의 기록적인 폭우로 수십 명의 사상자와 막대한 재산 손실을 초래한 물난리를 겪었던 지난여름의 악몽이 되살아난 순간이었다.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명언이 있다. 1945년 10월 17일 임시정부 환국 환영회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해방 후 좌우익으로 분열된 국민의 대동단결을 호소하며 강조한 말이다. 앞서 1754년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계몽주의 사상가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같은 말을 남겨 미국이 자유를 얻기 위해 영국과 싸운 독립전쟁에 큰 힘이 됐다. 2600년 전에는 그리스 우화작가 이솝이 “뭉치면 서고 흩어지면 넘어진다”고 말했다. 고대부터 서양인들 사이에 강했던 개인주의 성향을 비판한 것일 테다.

지금은 반대로 “뭉치면 죽고 흩어져야 산다”는 말이 세간에 회자한다. 3년에 걸친 코로나 팬데믹 탓에 분산의 중요성을 절감해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바로 그것이다. 겨울철 코로나 대유행이 우려되는 만큼 방역을 위해 사람이 많이 몰리는 장소를 삼갈 당위성은 여전하다. 올해 수도권에서 빚어진 안타까운 대형 재해와 재난 역시 과밀화에 대한 경계의 필요성을 대변한다. 선진국 대한민국의 부를 상징하는 서울 강남에서 8월 8일 대규모 침수 피해와 교통대란이 일어나고, 대통령실이 위치한 데다 외국인이 즐겨 찾는 용산에서 핼러윈 압사 참사가 생긴 건 과도한 인구 집중이 근본적인 원인으로 분석된다. 재난과 안전사고에 취약한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인파 관리를 위해 철저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수도권 과밀화의 심각성

2020년 초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수도권 인구는 2596만 명으로 비수도권 2582만 명을 앞질렀다. 지지난해 수도권의 인구 증가율은 1970년 대비 184.4%에 달했으나 비수도권은 11.7%에 머물렀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인구가 지나치게 집중되면서 과밀화가 심해진 까닭이다. 현재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인구 차이는 14만 명 정도지만, 50년 뒤 200만 명대까지 벌어질 것으로 통계청은 전망한다. 인구와 함께 자본과 기술을 가진 기업들도 수도권으로 쏠리면서 수도권 일극체제가 공고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은 국내 모든 걸 빨아들이는 힘이 엄청나 진공청소기나 블랙홀에 비유되곤 한다. 반면 비수도권은 진학이나 취업, 창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떠나는 젊은 층의 유출과 인구 급감으로 황폐화가 불가피하다. 기형적으로 비대해진 수도권과 지방 간 양극화의 심화는 국가경쟁력을 떨어트린다는 점에서 여간 심각한 폐단이 아니다.

수도권의 경우 끊임없이 유입되는 인구와 기업의 수요를 급히 해결하기 위해 난개발에 나서면서 도시 인프라와 편의·방재 시설을 제때,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상 기후로 증가세를 보이는 예측하기 힘든 자연재해에 대처하기 어렵고 각종 사고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올여름 거대한 물바다를 이룬 서울 강남 일대가 대표적이다. 한강변 저지대에 개발돼 상습 침수지로 꼽히지만, 거대 예산이 소요되는 빗물 저장 터널이 부족해 폭우나 홍수 피해를 크게 입는 사례가 잦다. 서울에 즐비한 반지하 주택도 그렇다. 서울 지하철과 서울~수도권 광역버스의 혼잡은 늘 불안하다. 코로나 사태에서도 초과밀화한 서울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의료 인프라와 방역 시스템이 어느 지역보다 우수하고 잘 갖춰졌는데도 서울 확진자 비중이 압도적이며 전국 확산과 재유행의 사다리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진은 8월 17일 부산 시민단체들이 지방분권·균형발전 실천 정부부처 설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부산일보DB 사진은 8월 17일 부산 시민단체들이 지방분권·균형발전 실천 정부부처 설치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부산일보DB

■실효성 없는 지역균형발전

정부가 수도권 집중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는 데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2년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제정돼 수도권 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다. 정부는 수도권 기업에 부담금을 부과하거나 신·증설을 억제하는 규제를 통해 기업의 지방 이전을 유도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극복을 이유로 수도권 입주 조건 등 기업 규제를 완화했다. 이 바람에 수도권 기업의 지방행은 급감했으며 신규 기업 또한 수도권에 둥지를 틀기 일쑤다. 사람과 기업의 수도권 유입 방지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게다. 그런데도 수도권에서는 지역 발전을 내세워 주택 보급 확대와 추가적인 규제 완화를 촉구하고 있어 과밀화를 부채질한다.

전임 문재인 정부와 현 윤석열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도 생색내기에 그치며 겉돌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대통령 자문기구에 그쳐 중앙 관료들에게 팽배한 수도권 중심주의조차 극복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각 부처의 정책을 통할하고 조율해 균형발전을 실효성 있게 강력히 밀어붙일 수 있는 추진력이 없는 것이다. 지난 11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곧 출범을 예고한 지방시대위원회도 힘 있는 정부부처가 아닌 자문기구여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니 현 정부가 내놓은 반도체산업 육성계획도 지방을 배려하지 않아 수도권 집중만 가속화할 거란 비난을 받는다. 이런 가운데 지방소멸 위기론이 불거진 지 오래다. 이제 비수도권의 상당수 농어촌과 소도시가 인구 감소에 따라 소멸 위험에 처했다는 뉴스는 식상할 지경이다. 급기야 14일 명색이 제2 도시인 부산의 중·동·서·영도구 등 원도심까지 소멸할 위기에 직면했다는 통계청 자료가 나와 지역민들에게 좌절감을 안겼다.

■지방분권 확립만이 해결책

수도권이 더욱 과밀화하면 그 부작용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되고, 결국 국가적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2018년 서울 KT 아현지사 화재와 지난달 15일 경기도 성남시 SK C&C 판교데이터센터 화재가 그런 경우다. 두 사고로 각각 발생한 통신대란과 카카오 서비스 장기간 중단은 온 국민의 불편과 경제적 피해를 야기한 국가적 마비 사태다. 수도권과 중앙집중식 시스템을 탈피해 시설의 분산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탈중앙화와 분산은 디지털 플랫폼과 데이터에 기반한 초연결 사회로 접어든 웹3.0 시대의 중요 덕목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부와 정치권은 비수도권에서 고조되고 있는 지방분권 개헌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마땅하다. 헌법 조항에 지방분권을 명시해 지방자치와 균형발전 촉진을 위한 법적 강제력을 부여하자는 주장이다. 이를 실행에 옮겨 지방정부에 힘을 실어 주고 자치분권을 확립해야만 수도권 일극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다. 올해 비극적인 사건사고로 얼룩진 수도권의 과밀화에 따른 폐단에서 교훈을 얻어 과밀화를 완화·해소하며 수도권·비수도권의 공멸을 막는 일이 시급하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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