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복되는 ‘깜깜이 선거’, 더 이상 유권자 우롱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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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후보 등록에도 선거구 획정 안 돼
기성 정치의 참담한 민낯 개탄스러워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예비 후보자 등록 시작을 하루 앞둔 11일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등록 접수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22대 국회의원선거 예비 후보자 등록 시작을 하루 앞둔 11일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직원들이 등록 접수 준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으로 내년 4월 10일 치러지는 제22대 총선 레이스가 본격 펼쳐지게 됐다. 예비후보로 등록하면 선거사무소 설치, 후원금 모집 등 사실상 모든 선거운동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을 어디에서 얼마나 어떻게 뽑을지 규칙과 기준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아 현장에서의 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깜깜이 선거’라 할 것인데, 그럼에도 선거관리위원회는 예비후보자 접수를 개시할 수밖에 없으니 이처럼 난감한 일이 달리 또 있을까 싶다. 현역 정치인과 정치 신인 간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자는 차원에서 2004년 도입된 예비후보자 제도의 취지 역시 무색해지게 됐다.

당장 발에 떨어진 불은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 획정이다. 법대로라면 총선 1년 전에 벌써 마무리됐어야 한다. 그러나 총선이 4개월도 채 남지 않은 지금까지도 획정되지 않고 있다. 지난 5일 중앙선관위 선거구획정위원회가 획정안을 국회에 내놓기는 했다. 획정안 기준을 마련해 달라는 선관위의 거듭된 요청에도 여야가 아무런 답이 없자 김진표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를 기다리지 못하고 현행 기준대로 하자고 선거구획정위에 통보한 데 따른 결과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종 결론 도출까지는 난관이 예상된다. 획정안이 국민의힘에게 유리하게 적용됐다며 더불어민주당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 선거구 획정 늑장 처리는 총선 때마다 반복된 악습이다. 21대 총선 때에는 선거일을 불과 한 달 남짓 남긴 3월 6일에야 획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바 있다. 이처럼 선거구 획정이 졸속으로 처리될 경우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대 총선 당시에는 뒤늦게 선거구 재조정 요구가 빗발치면서 공천 무효 등 파문이 일기도 했다. 현재의 선거구 획정 지연은 선거제 개편이 지지부진한 탓이 큰데,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거대 양당의 입김 때문에 선거제 역시 과거로 퇴행한다는 비판이 크다. 위성정당 등 우리 선거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던 21대 총선 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 개편이 정당 간 의석 하나라도 더 챙기려는 ‘밥그릇 싸움’으로 전락하면서 정치개혁이라는 당초의 취지는 오간 데 없이 사라졌다. 기성 정치의 부끄럽고 참담한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라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이런 정치 현실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건 다름 아닌 유권자라는 점에서 이는 결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선거구가 정해지지 않아 국민의 정치적 의사결정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다니, 이는 유권자를 우롱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언제까지 유권자가 이 같은 폐해를 지켜봐야 하는가. 여야는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 개편을 조속히 마무리 지음으로써 유권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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