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멀쩡한 원단회사”…울산경찰, 1200억 도박 조직 검거
전국 성인PC방 2133곳 공급망 구축
새 사이트 개설 직전 총책·개발자 덜미
피의자 9명 구속·27억 상당 추징보전
울산경찰청은 전국 2000여 곳의 성인 PC방에 불법 도박 사이트를 공급·관리해 1200억 원대 판돈을 굴린 조직 15명을 검거했다고 31일 밝혔다. 10여 년간 정상적으로 영업하면서,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한 원단 업체 모습. 울산경찰청 제공
전국 성인PC방 2100여 곳에서 1200억 원대 판돈을 굴린 기업형 불법 도박 사이트 조직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10년 넘은 원단 회사와 인테리어 업체를 방패막이 삼아 합법 사업가 행세를 해왔다. 이 과정에서 친밀한 관계가 범죄 가담자를 끌어들이는 통로로 이용됐다.
울산경찰청은 베트남에 거점을 두고 불법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며 전국 성인PC방에 사이트를 공급·관리한 혐의(도박공간개설 및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운영자와 국내 총판, 개발자 등 15명을 검거해 이 가운데 9명을 구속했다고 31일 밝혔다.
이들은 2025년 12월부터 5월까지 베트남 콜센터를 거점으로 슬롯과 바카라 게임 사이트를 운영하며 전국 성인PC방 2133곳을 관리한 혐의를 받는다. 이 기간 오간 판돈만 1200억 원 상당으로, 관리한 매장 수(2133곳)는 울산 전체 성인PC방의 두 배를 웃돈다.
이들의 범행은 정상적인 생업을 유지하면서 이뤄졌다. 50대 총책 A 씨 등은 서울에서 10년 넘게 원단회사를 운영하면서, 회사 직원 1명을 베트남 현지 콜센터로 파견해 도박사이트 고객 응대와 충전·환전 등을 관리하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울산에서 인테리어 업체로 둔갑해 불법 도박사이트 총판 역할을 한 매장 모습. 외부에는 검은색 시트지가 붙어 있고, 내부엔 다수의 PC와 대포폰이 발견됐다. 울산경찰청 제공
울산에서 총판 역할을 한 B 씨 역시 도심 한복판에 인테리어 업체 간판을 내걸고 영업망을 관리했다. 하지만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창문을 검은색 시트지로 가린 채 PC 수십 대와 대포폰을 갖춰놓고 총판 업무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 B 씨는 최근 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하부 매장인 성인PC방 역시 은밀한 영업 특성상 공개 채용 대신 부녀가 함께 매장을 운영하거나, 학창 시절 동창을 끌어들이는 등 가족과 지인망을 범죄 수단으로 악용했다.
경찰 수사는 지난 4월 27일 중구의 한 성인PC방 불법 환전 단속에서 출발했다. 경찰은 하부 매장이 적발될 때마다 도메인과 화면을 바꿔치기하던 이들이 서울 중소기업 개발자를 포섭해 새 사이트로 리뉴얼하려던 직전 단계에서 총책과 개발자를 급습해 재영업 기반을 끊었다. 국내 총책이 잡히자 필리핀으로 달아났던 해외 콜센터 조직원들도 경찰의 여권 무효화 조치로 지난 3일과 23일 인천·김해공항에서 입국하다 전원 체포됐다.
해외 도박사이트 조직도. 울산경찰청 제공
경찰은 현금 3900만 원과 PC 43대 등을 압수하고 피의자 13명을 대상으로 범죄수익 32억 6255만 원에 대해 추징보전을 신청해 27억 원 상당을 법원에서 인용받았다. 경찰은 필리핀에서 도피생활 중인 나머지 조직원 1명에 대해서도 국제공조를 통해 추적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PC방 한 곳의 단속에 그치지 않고 개발자와 해외 조직 등 배후 상선까지 뿌리 뽑는 수사를 이어갈 것”이라며 “확인된 하부 유통망과 범죄수익 자금 흐름도 끝까지 추적해 사행성 도박 생태계를 차단하겠다”고 말했다.
오상민 기자 sm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