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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도 주목한 한국계 극작가 이야기…‘패스트 라이브즈’ [경건한 주말]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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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봄을 맞아 극장가에도 활기가 돕니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파묘’가 6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이어 28일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대작 ‘듄: 파트2’가 호평 속에 관객몰이 중입니다.

이달 6일에는 수작들이 동시 개봉했습니다. 엠마 스톤을 주연으로 내세운 도발적인 화제작 ‘가여운 것들’과 미국 아카데미도 주목한 한국계 감독의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즈’가 주인공입니다. 두 작품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도 상영된 바 있는데요, 당시 기자는 일정상 ‘가여운 것들’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화려한 영상미와 독특한 시나리오, 엠마 스톤의 열연이 시너지를 일으켜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어 호불호가 크게 갈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지난 6일 극장에서 감상한 ‘패스트 라이브즈’는 잔잔한 분위기 속에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지는 작품이라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합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CJ ENM 제공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CJ ENM 제공

‘패스트 라이브즈’의 시놉시스를 요약하면 ‘첫사랑과의 재회’입니다. 흔한 로맨스물 소재이지만, 이 작품은 ‘과몰입’을 유발하는 특이한 힘이 있습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나영’(그레타 리)과 ‘해성’(유태오)입니다. 둘은 12살 때 서로 좋아하는 단짝이었지만, 나영이네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헤어집니다. 공원에서 즐긴 마지막 데이트를 끝으로 두 사람은 각자 인생을 살아갑니다.

여기까지는 여느 첫사랑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12년이 지나 두 사람이 서로의 행방을 찾는 것을 발단으로 극적인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2012년, 24세가 된 두 남녀는 SNS를 통해 서로 안부를 묻습니다. 해성은 군 복무를 마친 뒤 서울의 한 대학을 다니고, 나영은 미국 뉴욕에서 연극 극작가가 됐습니다. 성인이 된 둘에게 남은 교집합이라곤 어린 시절 추억뿐이지만, 해성과 나영은 서로에게 강하게 끌립니다. 매일 화상 통화를 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지만, 현실의 벽에 막혀 연락이 끊깁니다.

그러나 둘의 관계까지 끊긴 건 아닙니다. 다시 12년이 지났을 때, 해성이 나영을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향합니다. 24년 만에 첫사랑과 재회한 두 사람은 너무나 복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CJ ENM 제공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CJ ENM 제공

한국계 영화감독 데뷔작…섬세한 연출·각본 눈길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계 캐나다 영화감독 셀린 송(36)의 데뷔작이자 송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어렸을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간 뒤 뉴욕에서 극작가로 일한 송 감독은 어느 날 뉴욕까지 찾아온 친구와 남편이 함께한 술자리를 계기로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영화 속 나영 캐릭터는 송 감독의 페르소나인 셈입니다.

송 감독은 남편과 친구가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날에 대해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술을 마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세 사람이 서로에게 무엇인가 물었을 때, ‘인연’이라는 말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영화에도 ‘인연’이라는 단어가 거듭 등장합니다. 제목인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 역시 ‘전생’이라는 뜻인데, 극 중 나영과 해성은 전생과 인연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이해해보려 합니다.

물론 영화의 핵심은 전생이나 윤회 같은 동양 사상을 서양에 소개하는 게 아닙니다. 이번 작품은 바로 ‘인생 이야기’라는 게 송 감독의 설명입니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로 걷느냐에 따라 인생의 풍경이 달라지는 우리네 삶이 영화에 녹아있습니다. 그래서 전생 따위 믿지 않는 기자도 영화를 보는 내내 인생의 여러 순간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또 차분한 전개와 세심한 연출이 특징입니다. 대체로 정적인 분위기가 자칫 지루함을 안길 수 있지만,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생각을 자극하는 의미심장한 대사 덕에 몰입하기 쉽습니다. 예컨대 성인이 된 해성과 나영이 처음 화상으로 통화하는 장면에선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났을 때 느낄 수 있는 어색함과 반가움의 공존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 대사들이 현실적이면서도 마음에 와닿습니다. 특히 유태오의 표정 연기가 대단합니다. 나영을 만나기 전 잔뜩 긴장한 표정부터 아이처럼 해맑은 모습까지 다양한 일상 연기를 펼칩니다. 유태오는 이 작품을 통해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되는 등 여러 영화제 카펫을 밟으며 국제적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CJ ENM 제공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CJ ENM 제공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CJ ENM 제공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CJ ENM 제공

복잡하고 다원적인 감정을 스크린에…오스카 작품·각본상 후보까지

‘패스트 라이브즈’의 몇몇 장면은 아주 인상적인데, 누구나 느낄 법한 복잡미묘한 감정을 스크린에 옮겨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특히 나영과 남편 아서(존 마가로)가 관계와 선택을 주제로 대화하는 신은 관객으로 하여금 묘한 감정과 많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영화의 시작이 된 남편과 친구, 그리고 송 감독의 삼자대면 자리도 재현됐습니다. 이해심 많은 남편 아서는 나영을 찾아 뉴욕까지 온 해성에게 불안감을 느끼지만, 두 사람의 만남을 가로막지는 않습니다. 해성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세 사람이 함께한 술자리에서 나누는 대화에서 명대사들이 나옵니다.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라스트 신은 압권입니다. 송 감독이 택한 촬영 기법이 과연 묘수입니다. 인물들을 먼 거리에서 촬영하는 롱쇼트 기법이 연극적인 느낌을 연출하면서도 캐릭터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동안 여운이 남을 정도로 울림을 줍니다.

다만 호불호가 갈릴 요소도 있습니다. 일부 대사는 문학적 성격이 짙어 영화보다는 연극에 어울립니다. 이런 대사는 배우의 연기마저 어색해 보이게 하고, 작위적이거나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또 극적인 요소가 없어 전체적으로 심심하고 밋밋하다고 평가하는 관객도 있습니다.

영화는 해외에서 반응이 뜨겁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패스트 라이브즈’를 두고 “최근 본 작품 중 가장 좋았던 영화”라고 말했고, 실제로 올해 전미 비평가 협회상(작품상), 런던 비평가 협회상(외국어 영화상), 미국 감독 조합상(신인감독상) 등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었습니다. 오는 11일 열리는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작품상과 각본상에 노미네이트 된 상태입니다.

다만 경쟁작들이 워낙 쟁쟁합니다. 작품상에 함께 노미네이트 된 영화 중 수상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입니다. 각본상 역시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가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외신들은 분석합니다.

송 감독은 자신의 작품이 후보에 오른 것 자체가 기쁘다면서 “앞으로도 제 이야기를 녹인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CJ ENM 제공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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