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앤피플] ‘한국형 국부펀드’로 미래산업 먹거리 마련한다

박지훈 기자 lionki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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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보유 중인 공기업 지분 등 활용
초기 자본 20조 규모 펀드 조성 계획
노르웨이·싱가포르 등 모범 사례 참고
민간 전문가 위원회가 투자 결정 방식
KIC·국민성장펀드와 차별성 있어야
운용 독립성 위해 정치 외풍도 차단을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으로 반도체 수출이 초호황을 맞이하자 정부가 초과세수를 미래에 투자하는 국부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최근 슈퍼사이클로 최고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삼성전자 제공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으로 반도체 수출이 초호황을 맞이하자 정부가 초과세수를 미래에 투자하는 국부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최근 슈퍼사이클로 최고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삼성전자 제공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으로 반도체 수출이 초호황을 맞이하자 정부가 초과세수를 미래에 투자하는 국부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SK하이닉스 본사 전경. 연합뉴스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으로 반도체 수출이 초호황을 맞이하자 정부가 초과세수를 미래에 투자하는 국부펀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SK하이닉스 본사 전경. 연합뉴스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대전환과 맞물려 반도체가 전례 없는 초호황을 누리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앞세운 대한민국 경제도 수직 상승 중이다. 올해 반도체 수출 호조로 예상되는 초과세수 역시 20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정부는 막대한 재원을 ‘종잣돈’ 삼아 ‘한국형 국부펀드’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래산업에 투자하고, 다음세대에 수익을 물려주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특히 돈을 불리는 차원을 넘어 기술의 ‘초격차’를 유지해 미래 산업 먹거리를 마련해두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12월 기획재정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한국형 국부펀드’ 설립 계획을 밝혔고, 올 1월 20조 원 규모의 초기 자본금으로 설립한다는 윤곽도 제시했다. 정부는 보유 중인 공기업 지분이나 상속세 물납주식 등 현물 자산을 바탕으로 초기 규모 약 20조 원 규모의 국부 펀드를 조성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여기에 초과 세수를 재원으로 추가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국가 주도 산업정책의 귀환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기업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던 ‘작은 정부’는 이제 ‘옛말’이 됐다. 이런 기조와 맞물려 국부펀드는 세제혜택과 보조금을 통한 전통적인 산업 지원을 대신할 정책 수단으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10월 국제통화기금(IMF)는 세계경제전망을 발표하면서 주제별 보고서로 ‘산업정책의 귀환’을 소개했다. 통화정책을 주로 다루는 IMF가 산업정책 평가 보고서를 발표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는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 새롭게 도입하는 산업정책이 전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는 방증이다.

미국은 지난 바이든 정부부터 이미 인프라법, 반도체과학법, 인플레이션감축법 등을 통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제조업의 ‘리쇼어링(자국 내 복귀)’을 지원했다. 유럽연합(EU)는 역내 탄소중립 기술 제조 역량과 핵심 원자재 공급망 구축을 지원에 나섰다. 일본 역시 경제안보와 공급망 강화를 내세워 한국과 대만에 빼앗긴 반도체 산업 회복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초호황 ‘돈잔치’ 대신 미래에 투자

한국형 국부펀드는 설립 목적은 노르웨이를, 운영 방식은 싱가포르를 참고하고 있다.

1971년부터 노르웨이는 북해 유전에서 석유를 생산하고 있다. 북유럽 동토에 위치한 노르웨이는 유전을 발견하며 유럽 대표 산유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에너지로 얻은 막대한 수익을 ‘돈잔치’로 끝내지 않았다. 1990년 북해 유전에서 나온 수익 전부를 국부펀드로 적립해 지금은 운용 자산 3000조 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연기금으로 키웠다.

벤치마킹 대상으로는 싱가포르 정부의 국부펀드 ‘테마섹’을 주목한다. 자산증식 위주의 재무적 투자 대신 산업 경쟁력 증대 등 국가 경제정책을 뒷받침 하는 ‘전략형’ 역할이 점쳐진다. 기존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와 구분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인공지능(AI), 우주·방산 등 일개 기업이 추진하기 어려운 최첨단 산업의 육성을 위한 국가 주도 산업전략의 일환인 것이다.

최근 각국이 조성해 운용하는 국부펀드 역시 자국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수단으로 기능한다. 미국 역시 사상 첫 국부펀드 창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루스 소셜’을 통해 “미국 정부가 인텔의 지분 10%를 완전히 소유하고 통제하게 됐다”고 밝혀 미국 경제계를 놀라게 했다.

해당 인텔 지분은 바이든 정부 시절 반도체과학법에 따라 지급된 보조금의 일부다. 이는 인텔의 파운드리 시장 철수를 막고 미국 내 생산을 유지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를 보여준다.

■공격적 투자, 첨단기술 접근 ‘청사진’

현재 KIC는 외환보유고 일부를 운용하며 유사 시 달러를 수혈하는 ‘곳간’ 역할을 한다. 공격적인 전략산업 투자 보다는 미국 국채나 해외 주식 등 위험성이 낮고 환매가 쉬운 자산에 집중하는 ‘보수적’인 수익형 펀드에 가깝다.

싱가포르 국부펀드는 재무적 투자 중심의 ‘싱가포르투자청(GIC)’와 ‘전략형’ 투자를 담당하는 ‘테마섹’으로 나눠 ‘투트랙’ 전략을 구사한다. 특히 전략형 펀드인 테마섹은 수익성뿐만 아니라 자국 경제발전의 책무를 수행한다.

기존 수익형 국부펀드가 해외 투자 중심이었다면, 전략형 펀드는 국내 투자도 적극적이다. 이 같은 전략을 통해 테마섹은 자산이 1974년 출범 당시 3억 싱가포르달러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말 4900억 싱가포르달러까지 성장했다.

해외 주요 핵심기술에 대한 접근과 확보 역시 전략형 펀드의 주요 임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전략형 국부펀드는 자산 증식을 목적으로 한 재무적 투자자가 아니라 기업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서 “기술기업 투자로 신기술을 확보하고, 자국 기업과의 인수합병(M&A)를 추진하는 등 일종의 사모펀드와 같은 공격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중복투자·외풍 우려 등 해결해야

정부가 새로 출범을 준비하는 국부펀드는 민간 전문가 중심의 위원회를 거쳐 투자 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운용될 예정이어서, 기금에 비해 자유롭게 투자를 집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존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 국내 첨단·전략산업 육성을 지원하는 국민성장펀드와의 차별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부펀드와 국민성장펀드 모두 국내 투자를 포함하고 있어 투자 대상이 중복될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 펀드로 시중 자금이 몰릴 경우 민간 시장에는 투자 자금이 부족해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여기에 은퇴 경제관료의 ‘자리 나눠 먹기’나 펀드 운용의 독립성을 위협할 정치권 외풍도 출범 전 해소해야 할 문제다. 최근에는 기획예산처가 초과세수를 활용한 ‘미래대응기금’ 신설을 제안하면서, 재경부와 기획처가 막대한 자금 운용 주도권을 두고 기싸움을 벌인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치적 압력으로 특정 지역이나 사양 산업에 자금을 투자하라는 압력이 작동하면 자본시장에서 펀드의 신뢰성이 훼손된다”면서 “정치권과 관료 집단의 압력을 차단한 거버넌스 구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현재 다양한 방안을 두고 관계 부처가 협의하며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라며 “기존 펀드와의 중복 투자 우려 해소와 펀드 운용의 독립성 보장도 협의 단계에서 장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지훈 기자 lionki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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