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일필일침] 부산에는 이순신 있다
논설위원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세계 주요 도시
상징 자산 활용 그들만의 정체성 구축
부산 역시 ‘이순신’이라는 자산 있지만
지금까진 자긍심으로 만들어내지 못해
최근 ‘전재수 인수위’ 여해재단 방문
도시 미래 이끌 자산, 적극 활용 고민을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도시다. 이 도시가 세계인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된 데에는 명문 축구 구단 FC 바르셀로나의 역할이 있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그러나 도시 브랜드를 오늘날의 위상으로 끌어올린 결정적 인물은 따로 있다. 바로 ‘신의 건축가’로 불리는 안토니오 가우디다. 1882년 착공 이후 140년이 넘도록 건설이 이어지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비롯해 구엘공원, 카사 밀라 등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바르셀로나로 불러 모은다. 오늘날 가우디는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존재이자 도시 정체성을 떠받치는 한 축이 됐다. 이제 가우디를 빼놓고 이 도시를 이야기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세계 주요 도시들은 이러한 상징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의 도시로 인식된다. 또 영국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은 셰익스피어의 도시로, 체코 프라하는 카프카의 도시로 기억된다. 도시를 떠올리는 순간 한 인물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은 그들의 삶과 업적이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 속에 녹아들어 하나의 서사를 이뤘기 때문이다.
최근 전재수 부산시장 당선인 인수위원회가 부산여해재단을 찾았다. 여해(汝諧)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자(字)다. 재단은 그의 정신과 가치를 연구·계승하는 기관이다. 인수위와 재단 관계자들은 한 시간 넘게 의견을 나눴다. 부산의 미래를 설계할 인수위가 여해재단을 방문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산은 이순신 장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도시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은 한산도대첩에 이어 부산 앞바다에서 또 하나의 대승을 거뒀다. 흔히 부산포해전으로 불리는 부산대첩이다. 이 전투는 왜군의 보급과 해상 전략의 핵심 거점을 공격해 그들의 해상 장악력에 치명타를 가한 승전이었다. 부산은 오래전부터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기억해 왔다. 부산시가 46년 전 부산대첩일을 시민의 날로 지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잊혀 가던 역사를 도시의 기념일로 되살려낸 것이다.
부산대첩은 부산의 기억이자 상징이며 자부심이다. 장소성과 역사성, 그리고 강력한 서사를 두루 갖춘 부산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산은 지금까지 이 자산을 도시 정체성과 시민의 자부심으로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도시는 기억을 품을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자신만의 역사와 이야기를 발견하고 이를 시민의 자긍심으로 승화시킬 때 비로소 도시의 경쟁력도 커진다. 바르셀로나와 잘츠부르크가 이를 보여준다.
부산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해양도시다. 이순신은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전략가이자 바다의 상징적 인물이다. 세계인들이 그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하는 이미지 역시 바다다. 해양수도를 지향하는 부산의 미래 비전과 이순신 정신이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는 이유다. 부산항 북항친수공원의 명칭 변경 논의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최근 부산시의 부산대첩기념관 건립 타당성 연구용역 결과, 시민 78%가 ‘부산대첩기념공원’으로의 명칭 변경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시민들 역시 역사와 이야기가 담긴 공간을 원하고 있다는 뜻이다. 가덕신공항 명칭 논의도 마찬가지다. 공항은 도시의 관문이자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도시의 얼굴이다. 임진왜란 당시 가덕도는 이순신 장군의 중요한 전략 거점 가운데 하나였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공항 명칭에도 부산의 정체성과 상징성을 담아낼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이순신공항’이라는 제안 역시 그런 차원에서 검토해 볼만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단 얘기다.
이제 부산은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 있다. 민선 9기 전재수 시정이 내달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한다. 새 시정 앞에는 지역 산업 회복, 인구 감소 대응, 청년이 떠나지 않는 도시 조성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정책의 바탕에는 도시 정체성이 자리해야 한다. 도시의 경쟁력은 높은 빌딩이나 대규모 개발사업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민들이 자신의 도시를 얼마나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느냐에서 시작된다. 그런 자부심이 경제를 살리고 문화를 꽃피우며, 공동체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도시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작은 곳에서 시작된다. 어떤 가치를 도시의 중심에 둘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 때론 도시의 미래를 결정한다. 만약 인수위의 여해재단 방문이 이런 고민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이제는 주저 없는 결단이 필요하다.
부산에는 부산대첩이 있고, 우리에게는 이순신이 있다. 그리고 이를 이어줄 역사와 서사가 있다. 이제 이 유산을 과거의 기억에만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 이를 부산의 미래를 이끌 도시 자산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활용해야 한다. 그래야 동력이 된다. 부산의 자긍심, 도시의 자부심, 그 중심에 이순신이 있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