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까지 부산 강서구 녹산국가산업단지 일대에 들어설 이지스자산운용 신규 AI 데이터센터(지하 1층, 지상 13층) 투시도. 산업단지공단 부산지역본부 제공
비수도권 데이터센터에 대량 전력 '직구(직접구매)'를 허용하는 방안에 대해 주무부처인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지산지소'(地産地消) 정책에 맞지 않는다며 부정적 입장을 냈다.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할 정도의 대형 발전소는 국가 송전망 연결이 필수적이어서 지산지소 정책에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10일 국회에 따르면 비수도권 분산에너지 특화지역(분산특구)에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하려는 발전사업자에게는 ‘40MW(메가와트)의 발전설비 용량 제한’을 적용하지 않고, 또 전력시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전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분산에너지법’ 개정안에 기후부는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 기후부는 "대형 발전설비가 초고압 계통에 연결되는 순간 전력이 전국 단위로 유통되는 중앙 집중형 전원(電源)의 성격을 띤다"면서 "중앙 집중형 전원과 다를 바 없는 대규모 (발전)사업자에게 직접 거래 특례를 허용하는 것은 분산에너지 기본 정의와 법 제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분산특구는 원거리 송전망 대신 수요지 인근에서 에너지를 생산·소비하는 ‘지산지소형’ 전력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기사업법’ 등에 규제특례를 부여해 분산 자원을 활용한 신산업 육성을 위한 것으로, 현재 부산, 울산 등 전국에 분산특구 7곳이 지정된 상태다. 분산에너지는 재생에너지와 소형모듈원자로(SMR) 등을 포함한 설비용량 40MW(메가와트) 이하 모든 발전설비와 500MW 이하 집단에너지 발전설비 등이 해당된다.
기본적으로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는 송전망을 통해 수요지로 옮겨진 뒤, 배전망을 통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분산에너지'는 규모가 비교적 작은 발전설비를 여러 곳에 만들어 송전망을 확충하지 않고 지역 내 배전망만을 활용해 전력을 공급한다는 개념이다.
분산에너지법상 분산에너지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공간·지역 또는 인근에서 공급하거나 생산한 에너지'로 규정된다.
SK브로드밴드의 AI 데이터센터(AIDC) 모습. SK브로드밴드 제공
분산에너지 설비 용량은 원칙적으로 40MW(메가와트) 이하로 제한되는데, 이는 배전망의 전압 등을 고려했을 때 설비를 송전망이 아닌 배전망에 접속시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기술적 한계치에 해당한다.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수백MW의 전력을 공급할 대형 발전설비는 전력망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 송전망과 초고압 변전소와 연결이 필수적이다. 결국 기존 발전소와 다를 바 없는데, 단지 비수도권에서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공급한다는 이유로 직접 공급 특례를 부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기후부 입장이다.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려는 업계는 발전사업자와 전력구매계약(PPA)을 맺고 전기를 직접 구매하는 것이 허용되길 바란다. 데이터센터 전용 발전소를 갖춰 '싸고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PPA를 유인책 삼아 데이터센터를 비수도권으로 분산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업계가 특히 원하는 것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전력 직접구매계약 특례'이다. LNG로 생산된 전력을 직접 구매할 수 있으면 전기요금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지난 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산업 진흥에 관한 특별법'에도 LNG 발전 전력 직접구매계약 특례가 포함될뻔 했다. 애초 소관 상임위원회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의결안에는 특례가 포함됐으나 기후부가 강력히 반대하면서 최종적으론 빠졌다는 후문이다.
기후부는 LNG 발전 전력 직접구매계약 특례에 대해 전력망 운영 측면뿐 아니라 탄소중립을 위해 화석연료 발전을 줄여야 하는 점에서도 우려를 가지고 있다. 석탄화력발전을 대체하는 것 외에는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인 LNG를 사용하는 발전을 늘리지 않는다는 것이 현재 기조인데, 데이터센터용 LNG 발전소를 더 짓도록 유도하는 것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데이터센터에 특례를 부여하면 반도체와 철강, 석유화학 등 다른 에너지 다소비 산업계에서 같은 특례를 요구할 경우 허용하지 않을 방안이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후부는 현행 체계에서도 데이터센터에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법제사법위 전체 회의에서 "여러 외국기업이 국내에 AI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의사를 타진하는 상황으로 5GW(기가와트, 1GW는 1000MW) 이상의 전력이 추가로 필요하다"면서 "기후부와 협의한 결과 현재 전력 수급 상태로 충분히 지원할 수 있다는 합의에 이르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