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만정’ 소리 연습을 1년동안 했어요. 노래만 1000번 넘게 한 것 같아요.”
배우 문소리는 드라마 ‘정년이’ 속 소리 연기를 위해 지난 1년간 맹연습했다고 말했다. 1950년대 국극단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천재 소리꾼이었던 서용례로 특별 출연했는데, 판소리 전공자라 해도 믿을 정도로 수준 있는 소리를 들려준다. 11일 서울 강남구 씨제스스튜디오 사옥에서 만난 문소리는 “소리 공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가락이라 사실 연습 기간 1년도 부족했다”고 밝혔다.
문소리가 딸 정년과 바닷가에서 함께 부른 ‘추월만정’은 최고 시청률 15.5%를 기록했다. 심청이가 황후가 된 후 아버지를 생각하며 부르는 소리인데, 판소리 전공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대목으로 꼽힌다. 문소리는 대학 시절 국가무형문화재 제5회 판소리 명예보유자였던 고 남해성 명창에게 소리를 배운 게 이번 작품을 할 때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문소리는 “학교 수업에 재미를 못 느끼고 종로 거리를 걷는데 북소리가 들렸다”며 “그 소리에 끌려 어느 건물로 들어갔는데 남해성 선생님이 북을 쥐고 앉아 계셨다”고 했다. 그는 “선생님께서 저를 보시더니 ‘춘향이가 왔네’라고 하신 기억인 난다”면서 “그렇게 1년 반 동안 소리 공부를 다니며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문소리는 이날 남 명창을 떠올리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선생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선생님의 가르침을 담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한 작품이에요.”
문소리는 요즘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년이’와 비슷한 시기에 출연작인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2’가 공개됐고, 지난달에는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 무대에서 관객을 만났다. 문소리는 “20년 넘게 해온 일의 연속이지만, 한 작품 한 작품 고민한 시간들이 좋은 평가를 받게 됐다”며 “비슷한 시기에 나와준 게 어떻게 보면 ‘럭키비키’(행운)”라고 방긋 웃었다.
‘지옥2’ 속 문소리의 모습도 흥미롭다. ‘정년이’에서 구성진 가락을 뽑아내던 것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이 작품에선 사이비종교인 새진리회와 손을 잡고, 세상의 균형을 다시 맞추려고 하는 대통령실 정무수석 이수경을 연기했다. 이 작품도 특별출연이지만, 밀도 있는 연기로 작품의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내 시청자의 주목을 받았다. 문소리는 “연상호 감독과 처음 작품을 같이 했다”며 “작품을 보는 시선이 저와 다른 편인데 그런 점이 더 장점으로 작용하더라”고 봤다. 그러면서 “시즌3 이야기는 못 들었지만, 만약 하게 됐을 때 저를 안 불러주면 약간 서운할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매체 출연만 해도 바쁠법한데, 문소리는 연극 무대에서도 꾸준히 관객을 만나고 있다. 지난달 27일까지는 연극 ‘사운드 인사이드’에서 열연을 펼쳤다. 그는 “연극 끝나고 나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걸 느낀다”며 “상대 배우,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과 깊이 소통하는 덕분에 관계를 더 깊이 쌓을 수 있는 점도 좋다”고 했다. 문소리는 “그 사이에서 얻어지는 따뜻함이 있다”며 “우정이나 일종의 사랑, 인간의 생기가 있는데 이것들이 좋은 과정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어 “무대에서 숨 쉬는 시간이 때때로 아름답게 느껴진다”며 “굉장히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1999년 영화 ‘박하사탕’으로 데뷔한 문소리는 지난 25년 동안 연기하는 재미와 사람 사이의 정을 느끼며 열심히 달려왔다고 했다. 그는 “인생의 재미를 돈으로 따질 수 없지 않나”라며 “돈으로 살 수 없는 진짜 아름답고 멋진 순간을 느끼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절 찾아주는 작품이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해요. 내년엔 ‘폭싹 속았수다’로 시청자를 찾을 것 같아요. 더 다양한 작품으로 인사드릴게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