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비 오면 큰일” 예고된 재난에 대책 없는 노후주택
집중호우 뒤 붕괴 사고 잇따라
이상기후 일상화되며 우려 커져
노인 거주 많아 재난에 더 취약
부산 30년 이상 주택 43만 호
빈집 철거 예산 고작 3억 원대
통계 누락 많고 점검 체계 허술
지난 광복절 연휴 내린 비로 무너진 서구 부민동3가와 영도구 남항동3가 빈집 모습. 이예슬 기자 ys@·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
19일 오전 11시 부산 서구 부민동3가 재개발 예정 구역의 주택가.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만한 좁은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자 ‘추가 붕괴 우려가 있으니 우회하라’는 안내문이 붙은 펜스가 길을 막았다. 펜스를 지나자 지난 16일부터 내린 폭우로 무너진 빈집이 보였다. 외벽이 뜯겨 나가면서 주택 내부가 훤히 드러났고 벽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석고보드가 위태롭게 붙어 있었다.
붕괴 현장 바로 옆집에 사는 주민 최정자(81) 씨는 며칠째 밤잠을 설쳤다. 최 씨는 “새벽 1시께 자고 있는데 옆집이 무너지는 소리가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며 “우리 집도 지금 물이 새고 있어 무너질지 걱정인데 이 근처에는 노인들이 많아 갑자기 사고가 나면 빨리 대피하기도 어렵다”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 부산에서 이어진 집중호우 이후 지역 곳곳에서 주택 붕괴가 잇따르면서 빈집과 노후주택 안전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예산과 행정 절차 문제로 빈집 철거가 더디고 노후주택은 안전점검 지원 등에서 소외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최근 국지성 폭우 등 이상 기후가 고착화되면서 빈집과 노후주택의 사고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날 부산시에 따르면 부산 지역 빈집은 지난해 말 기준 7803호다. 시는 1년 이상 전기와 수도를 사용하지 않은 미거주 주택을 빈집으로 규정하고 5년마다 실태 조사를 하고 있다. 빈집의 노후 상태에 따라 세 단계로 등급을 정하는데, 리모델링이나 철거가 필요한 2~3등급은 5376호에 달한다. 하지만 실제 빈집은 이보다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재개발 구역에 포함된 빈집은 실태 조사에서 빠지기 때문이다.
부산은 인구 고령화로 해마다 빈집이 늘고 있지만 철거 속도는 더디다. 최근 3년간 철거된 빈집은 452호에 그쳤고 올해 철거할 빈집도 250호에 불과하다.
이는 철거 예산이 부족하고 행정 절차가 복잡한 탓이다. 빈집 철거 예산은 지난해까지 매년 3억 원대에 그쳤다. 또 빈집은 철거 과정에서 소유자 동의가 필요하다. 장기간 방치된 집은 상속을 거치며 소유자가 여러 명으로 늘어나 동의를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시는 올해 철거 예산을 30억 원으로 늘리고 빈집을 사서 활용 방안을 찾을 계획이지만, 통계에서 누락된 빈집도 많다보니 전체 빈집의 위험성을 파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지난 광복절 연휴 무너진 서구 부민동3가 주택은 재개발 지역에 포함되어 있었고, 영도구 남항동3가 빈집은 전기와 수도 미사용 기록이 1년을 넘지 않아 빈집 등급 산정에서 제외됐다.
더 큰 문제는 사람이 살고 있는 노후주택이다. 이들 주택은 시 실태조사나 선제적인 점검 체계가 없어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더 어렵다. 안전 등급 측정 등 현황 파악과 보수·안전 점검 비용 지원 또한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한정돼 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부산 지역 준공 30년 이상 노후주택은 43만 호를 넘어 전체 주택의 약 32%에 달한다. 18일 오후 건물 외벽과 현관문 일부가 무너진 동구 수정동의 한 2층 단독주택도 지어진 지 60년이 넘은 노후주택이었다. 이 주택의 붕괴로 다친 70대 남성은 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다른 주민 2명은 동구청이 마련한 임시주거협약 호텔에서 당분간 머물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부산 지역 노후주택은 경사지나 해안 지역에 들어선 경우가 많아 재난에 더 취약하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구·군별 노후주택 특징과 취약점을 조사해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동의대 신병윤 건축학과 교수는 “부산에는 50년이 넘은 주택도 흔해 옹벽과 증축 등 과정에서 사용한 자재 등도 노후화했을 것”이라며 “지자체가 전문가 집단과 함께 지역별 ‘노후주택 위험지수’나 ‘주택 안전지도’를 만드는 등 세밀한 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재량 기자 ryang@busan.com , 이예슬 기자 y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