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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굴記-매몰된 역사①] 일본 본토 사수 특명, 부산항 둘러싼 거대 지하벙커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이승훈 기자 lee88@busan.com , 정수원기자 blueskyda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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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6주년을 맞아 <부산일보>는 부산 도심 곳곳에 방치된 '일제 동굴'을 재조명한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은 한국인을 강제 동원해 부산에 해안 포진지, 방공호, 광산 등 동굴 수십 곳을 뚫었다. 태종대 지하벙커, 망미동 구리광산 등 지금도 새로운 동굴들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굴곡진 부산 근현대사를 간직한 이 동굴들은 쓰레기 더미로 뒤덮이고, 입구가 콘크리트로 막히는 등 방치되고 있다. 강제노역 등 동굴 속 ‘아픈 이야기’도 제대로 된 조사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취재팀은 부산 동굴 안에 매몰된 지역의 역사를 땅 위로 드러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후대가 몸소 경험하고 깨우칠 수 있는 다크투어리즘(비극적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는 여행)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1940년대 초 아시아태평양전쟁 시기 일본군의 최전선 저항기지는 ‘부산항’이었다. 일본은 미국 등 연합군 공격을 막고자 오륙도에서 태종대까지, 부산항을 두르는 거대한 해안 포진지를 구축했다. 부산 대표 관광지로 인기를 얻고 있는 남구 오륙도와 영도구 태종대에는 지금도 일본군 탄약고, 막사, 물탱크, 포좌 등 ‘아픈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해안 포진지를 구축하며 자행한 강제노역, 집단학살 등의 목격담이 구술로 전해지지만, 구체적인 진상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 태종대, 굳게 닫힌 지하벙커

부산 영도구 태종산 중턱. 산책로를 벗어나 작은 개울을 건너자 눈 앞에 정체불명의 거대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로 3m, 세로 4m 정도 크기의 입구는 벽돌로 단단히 막혔다. 위쪽에 벽돌 1~2개가 빠져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틈이 있었으나, 워낙 좁고 어두워 내부 구조를 식별하기 어려웠다. 틈으로 내지른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는 것을 보아, 동굴 안이 꽤 깊은 것으로 짐작됐다.


태종대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해안 포진지'로 쓰였다. 사진은 태종대 내 태종사 부근에서 발견된 포진지, 현재는 시멘트 벽돌로 입구가 막혀있다. 태종대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해안 포진지'로 쓰였다. 사진은 태종대 내 태종사 부근에서 발견된 포진지, 현재는 시멘트 벽돌로 입구가 막혀있다.

취재 결과 이곳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해안 포진지 시설로 밝혀졌다. ‘일본 방위성 소장 부산주둔 일본군 자료집’에 따르면 태종대는 과거 아시아태평양전쟁 때 일본 본토로 가는 길목인 부산항을 지키던 군사 요충지였다. 1940년대 지도에는 부산 중구 포병연대를 중심으로 태종대, 청학동, 용호동, 감만동, 천마산에 중포병대 위치가 표기돼 있다. 이는 연합군을 막기 위해 부산항 주변으로 대규모 해안 포진지가 구축됐음을 의미한다. 이들 해안 포진지는 일시에 부산항 상공에 대공포를 쏘아 ‘화망(火網)’을 형성하는 전술로, 침투하는 연합군 전투기를 격추시켰다.


일본 방위성 소장 '조선소재중포병연대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태종대와 오륙도 등지에 포대(砲台)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 방위성 소장 '조선소재중포병연대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태종대와 오륙도 등지에 포대(砲台)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태종대 지하벙커는 해안 포진지 관련 시설로, 탄약고나 병사용 물탱크 보관소 등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경근대사료연구소 김한근 소장은 “만일 포를 쏘는 시설이라면 포를 위로 올렸다 내리는 시설이 따로 있을 것”이라면서 “어떤 이유로 입구가 막혔는지 모르겠지만, 내부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취재진은 전문가와 함께 동굴 주변을 돌아봤지만, 이미 여러 차례 보수 공사가 진행돼 유의미한 옛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동굴 내부로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산 비탈길에 배수로를 구축한 것으로 보아, 중요 장비를 보관하는 역할이 컸을 것으로 판단됐다.

현재 부산시나 태종대유원지사업소, 태종대 군사구역을 관할하는 육군 53사단도 이 땅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지 못하고 있다. 태종대유원지사업소 측은 “일제강점기 당시 동굴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정체는 확인할 수 없는 상태”라며 “태종대가 문화재보호구역이라 내부 확인을 위해서는 문화재청의 허가가 필요해 현재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태종대에 일제강점기 대규모 포진지가 있었던 만큼, 다른 군사 시설도 여럿 확인되고 있다. 동굴 건너편 태종사 초입에선 나무 판자로 입구가 막힌 작은 굴도 찾을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형태나 크기로 미뤄 저장고나 대피소로 추정했다.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김윤미 HK연구교수는 “많은 병력이 배치됐기 때문에 태종대에는 포진지뿐 아니라 탄약고, 막사, 저장소 같은 시설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 부산 최대, 오륙도 ‘장자등 포진지’

웅장한 해안 절경으로 유명한 부산 오륙도에도 일본군이 구축한 거대 지하동굴이 뚫려 있다. 남구 용호동 오륙도SK뷰 아파트 바로 옆 산책로 땅 아래 방치된 상태다. 오륙도 지하벙커는 길이 45m, 폭 14m로 부산에서 가장 큰 동굴형 포진지로 알려져 있다.


오륙도 해맞이 공원 일대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해안 포진지'로 쓰였다. 사진은 해안 포진지로 들어가는 동굴 입구. 오륙도 해맞이 공원 일대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해안 포진지'로 쓰였다. 사진은 해안 포진지로 들어가는 동굴 입구.

과거 ‘장자등 포진지’로 익히 알려진 오륙도 지하벙커는 아시아태평양 전쟁 당시 ‘16인치 캐논포’가 설치됐다. 태종대 지하벙커와 함께 부산항 좌우에 배치돼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1920년대 초 강대국들의 해군 군축조약에 따라 일본은 함선을 줄였다. 대신 함선에 있던 포를 장자등을 비롯한 해안 포진지에 설치했다.

취재진이 동굴 내부를 확인한 결과, 과거 포탄을 옮기던 레일이 깔렸고, 탄을 끌어올리기 위한 축력기도 있었다. 땅속 한쪽 벽면에는 축력기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물탱크도 자리했다.

지상에 올라와 있던 함포는 1940년대 태평양전쟁 당시 연합군 폭격으로 파손됐다. 길이 45m, 폭 14m 거대한 동굴 안은 드럼통 등 폐기물로 뒤덮여 있었다. 관리의 손길이 전혀 없었던 듯, 토사가 무너져 막힌 곳도 있었다. 동굴 바닥은 정체불명의 액체로 축축했다.


오륙도 해맞이공원 내 해안 포진지 내부 모습. 오륙도 해맞이공원 내 해안 포진지 내부 모습.

오륙도 해맞이공원 일대에는 동굴 이외에도 관측기지, 해수표, 탄약고 등의 흔적도 남아 있다. 풀숲에 뒤덮인 관측기지는 두꺼운 축대 일부만 남아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바다에 박혀 있는 해수표는 2018년 태풍 ‘콩레이’ 때 부서졌다. 해수표는 군사작전을 위해 해수면의 높이를 파악하는 구조물이다.

다행히 탄약고는 훼손되지 않았다. 지난해 해군작전사령부가 주민에게 개방한 산책로 옆에 동굴 형태로 조성돼 있다. 길이와 폭은 각각 100m, 50m. 해방 이후로는 문서보관소로 쓰였다.

장자등 포진지 일대에는 5000여 평 부지에 500여 명의 일본군이 주둔한 것으로 알려진다. 정규섭 남구문화관광해설사는 “이곳은 3개 포대와 탄약고가 있었던 우리나라 최대 포진지”라며 “해방 이후 소록도로 강제이송되지 않은 한센인 200여 명이 정착하는 등 역사적인 장소지만, 아무런 정비가 안 된 채 버려져 있다”고 말했다.


■ 강제노역과 집단학살…진상 조사부터

부산항 좌우, 오륙도와 태종대 해안 포진지에는 기록되지 않은 여러 목격담이 전해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 발견된 태종대 지하벙커의 경우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강제노역과 집단학살 관련 증언이 나오고 있다.

주민 안원찬(83·영도구) 씨는 “동삼동 바다에서 포탄을 실은 차량을 4명이서 밀어 태종대 위까지 옮겼는데, 무겁다 보니 넘어지고 차량에 치이고 했다”면서 “말을 탄 일본군 헌병대가 회초리로 때리기도 했고, 고문을 받다 죽으면 태종산 동굴에다 시체를 매장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영도구에 살았다는 김 모(70·동래구) 씨는 “막혀 있는 태종대 지하벙커 옆으로 2개의 동굴이 더 있었다”면서 “오래 전엔 동굴이 열려 있었는데 무서워서 들어가보지는 못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강제노역을 하던 민간인이 집단 학살된 뒤 매장됐다는 충격적인 목격담도 전해지고 있어, 진상 조사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경업 부산민문화연구원 대표는 “당시 주민 200명 정도가 태종대에 강제노역으로 끌려갔고 이후 일본군에 의해 집단 총살됐다는 제보를 받은 적 있다”면서 “굴에서 도망쳐 나왔다는 분과 그 가족을 만났지만, 굴 입구가 막혀 내부 조사를 벌일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태종대 지하벙커를 포함하는 태종대 전체가 문화재 보호구역인 데다, 주변이 군사구역이어서 여태껏 관리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장자등 포진지의 경우에도 인근 주민 등 한국인을 6개월 동안 강제로 노역시켰다는 증언이 계속 나오고 있다. 600명 가량이 동원됐는데, 외부에 군사기지의 위치가 노출되는 것을 우려해 한밤중 배를 타고 주변을 맴돌다 몰래 굴에 들어가 작업을 했다는 내용이다.

부산시의회 박성윤 의원은 “태종대를 비롯해 부산 곳곳에 밝혀지지 않은 일제의 아픈 역사의 잔재가 남아 있다”면서 “후대들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도록, 부산시가 주도적으로 전문가 그룹을 형성해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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