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남구 한 재개발 단지 입주 예정자인 A 씨는 아파트 단지 내부에 공공보행통로가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입주 예정자들과 함께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공공보행통로가 생기면 외부인들이 단지 내로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데다 공공보행통로에 연결된 엘리베이터 운영 비용을 입주민들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A 씨는 “난간 등을 설치해 외부인들이 단지 내부로 들어올 수 없도록 하고, 엘리베이터 운영 비용을 구청에서 지불할 수 있도록 입주 예정자들과 공론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개발·재건축 지역의 아파트 단지 대형화로 부산의 아파트 곳곳에 설치되고 있는 공공보행통로가 입주민과 주변 주민 사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공공 통행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공공보행통행로의 설치 취지를 살리고, 갈등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16일 부산시 ‘정비구역 공공보행통로 지정(설치) 현황’에 따르면, 부산 지역에서 공공보행통로가 설치되는 정비구역은 46곳(7곳은 준공)에 달한다.
공공보행통로는 일반인들이 24시간 자유롭게 보행할 수 있는 길로, 정비구역 내 아파트 단지의 경우 장방향 300m 이상이고 주변에 보행 수요가 많은 경우 설치하도록 한다.
재개발·재건축 정비구역 지정이나 대단지 아파트 개발이 가능한 지구단위계획 수립 때 조합이나 시행사 등은 개발 계획 단계에서 공공보행통로 설치 방안을 검토하고, 설치 여부와 위치는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통해 확정된다.
공공보행통로 설치에 따른 아파트 입주민과 주변 이웃들 간 갈등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해당 아파트 주민들은 사유지에 들어선 공공보행통로에 대해 재산권을 주장한다. 특히 공공보행통로가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는 경우 입주민들은 안전과 관리 상의 이유로 공공보행통로를 막거나 아파트와 분리하는 장치를 설치하고 있다.
부산의 B아파트는 2018년 단지 내 공공보행통로 2곳에 입주민만 출입할 수 있는 보안문을 만들어 외부인 출입을 차단했다. 재작년 입주한 C아파트는 외부인들의 출입과 아파트 시설 사용이 잦자 단지와 공공보행통로 사이에 철제 난간과 출입문을 설치했다. 공사가 한창인 D아파트도 준공 후 공공보행통로와 단지를 분리하는 스크린도어를 설치할 계획이다.
경사면을 깎아 조성된 아파트 단지의 경우 엘리베이터 사용 갈등도 있다. 평탄화 작업으로 단차가 생길 경우 어린이, 노약자 등 교통약자를 위해 심의에서 공공보행통로와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주문하기도 한다. 이에 일부 입주민들은 엘리베이터 운영 비용을 부담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한다.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공공보행통로 갈등은 첨예해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나 서초구, 강북구 다수의 아파트들이 공공보행통로에 철제 담장을 설치하거나 입주민만 이용할 수 있는 출입문을 만들어 외부인 출입을 막는 사례가 빈번하면서 서울시와 관할 구청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부산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대규모 재개발·재건축 예정지가 많아 앞으로 공공보행통로 갈등은 더욱 잦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병윤 동의대 건축학과 교수는 “공공보행통로는 아파트 개발로 사라지는 골목길을 대신해 대단지 아파트를 둘러가야 하는 불편을 줄이기 위한 장치로, 도시계획위 심의에서 공공성 확보를 위해 설치를 확대하고 꼼꼼하게 심의하는 추세”라며 “설치 취지를 살리고 주민들의 갈등을 줄일 수 있도록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