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을 진짜 영화·영상 도시로 만들려면 지금 같아선 안 됩니다. 이번에 착공한 영화촬영소도 특수한 경쟁력이 있어야 하고, 인재가 모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영화인과 대담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 장관은 부산 영화촬영소 착공식 다음날인 19일 부산 수영구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지역 영화인들을 만나 1시간가량 애로사항을 듣고 지역 영화산업 발전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는 전날 영화촬영소 착공식에서 유 장관이 축사자로 오른 김영진 로케트필름 대표를 본 뒤 만남을 제안하면서 이뤄졌다. 유 장관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부산을 영상 도시로 만들려면 인재가 유입되어야 하는데, 먼저 부산에서 영화를 만들고 제작하는 분들이 확실하게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담에는 김 대표를 비롯해 부산 제작사 관계자들과 감독, 독립예술극장 대표, 영화학교 학생, 부산문화재단 대표,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등이 함께 했다.
■영화인들 “환경 조성·기회 필요”
부산 영화인들은 이날 영화 제작 과정에서 느끼는 여러 고충을 이야기하며 다양한 의견을 냈다. 대표적으로 ‘네트워킹 한계’를 꼽았다. 김 대표는 “2020년 이후 부산에 영화 제작사들이 생기면서 상업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며 “부산시에서도 지역 제작사를 키우려고 지원을 하고 있지만, 아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메이저 펀딩, 매니지먼트사들은 여전히 모두 서울에 있는 상황”이라면서 “부산시나 문체부에서 부산 영화가 클 수 있도록 좀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조다빈 청춘필름 대표도 “동부산 영화·영상 벨트가 만들어지려면 부산에서 영화 업체들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며 “부산 지역 영화사들이 투자사나 매니지먼트사를 만날 수 있는 네트워킹 자리 같은 기회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 영화 기관 간 소통 부재에 아쉬움을 드러내는 목소리도 있었다. 제작사 눈의 김예솔 대표는 “부산영화영상제작협의회의 전 회장을 맡았었다”고 소개한 뒤 “부산 영상위원회나 영화진흥위원회 같은 영화 기관들을 만나보면 그들끼리도 소통을 많이 하지 않는 것 같았다”고 꼬집었다. 김 대표는 “부산시에선 인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영진위도 지역 영화 관련해 노력을 많이 하는데 영화인과 기관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자리 역시 부족하다”면서 “부산에서 영화를 만든 지 3년 정도 됐는데 이렇게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기회가 앞으로 더 많이 생겼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인재 유출 막아야 ‘부산이 산다’
영화 인재가 부산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과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여럿 나왔다. 김영진 대표는 “부산에 여러 영화학교가 있어 우수한 영화 인력이 배출된다”며 “부산에서 학교를 나온 친구들은 부산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데 일자리 많이 없어서 서울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했다. 김 대표는 “부산 지역 영화산업은 지금 발전하고 있고, 그 과도기에 있다”며 “지역 영상 업체들과 인재들이 잘 순환될 수 있게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로케트필름 박은영 프로듀서도 “부산 영화학교에서 괜찮은 작품들이 나오는데 부산 제작사와 같이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다빈 대표는 “부산에서 공부한 영화 인재가 결국엔 서울로 다 빠져나가는 게 아쉽다”며 “부산에서 영화를 배우고,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동서대 4학년 박진형 씨는 “서울로 취업 준비하러 가려고 하다가 부산에 영화 제작 프로젝트가 있어서 운 좋게 참여했다”며 “이런 좋은 프로젝트가 있으면 부산에서 공부한 학생들도 계속 부산에서 살며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일자리가 있으면 부산에서 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장관 “로컬 영화 생태계 경쟁력 중요”
유인촌 장관은 부산이 영화 영상 도시로서 자리매김하려면 보다 적극적으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부산에서 영화를 제작해서 개봉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고, 이 부분을 키워야 한다고 본다”며 “부산시가 이번에 영화 펀드를 새로 만들었으니 여건은 좀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장기적으로 부산이 명실상부한 영화·영상 도시로서 기능하려면 ‘특색’과 ‘경쟁력’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 장관은 “인력 문제가 중요하다”며 “부산에서 영화를 공부한 친구들도 영화 인재인데, 이 친구들부터 졸업 후 흩어져버리지 않고 영화 영상 업체와 잘 매칭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제작사들에게도 부산에서 제작하면 분명한 혜택이 있다는 유인책 같은 여러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부산시가 영상 중심 도시로 가기 위한 태스크포스(TF) 팀을 꾸리는 등 노력을 하고, 정부도 거기에 부합하는 정책을 만들도록 노력해보겠다”고 약속했다.
유 장관은 18일 착공한 부산 영화 촬영소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장관은 “요즘엔 민간 스튜디오도 많고, 규모나 기술력 측면에서 좋은 스튜디오가 많다”며 “다른 곳과 똑같은 스타일로 만들어 놓으면 경쟁력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완공이 2~3년 후에 되는데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걸 만들어 놔야 한다”며 “특색 있고, 경쟁력 있게 잘 만들어 놓으면 서울에서도 분명히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일단 스튜디오를 짓는 것부터 시작이니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들어갈지 영화인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눠야 한다”면서 “조금 힘들어도 열심히 해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