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개봉한 영화 ‘리볼버’는 기대할 포인트가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전도연, 임지연, 지창욱, 이정재라는 화려한 캐스팅이 가장 눈에 띄고, ‘무뢰한’(2015)을 연출한 오승욱 감독이 연출을 맡은 느와르 장르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개봉 이튿날인 8일 오후 현재 관람객의 평가는 최악에 가깝습니다. CGV 실관람객 만족도를 나타내는 골든에그 지수는 70%로 떨어졌습니다. 영화를 나름 재미있게 본 기자는 난무하는 혹평을 보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영화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던 포인트와, 관객들이 비판하는 지점을 설명해볼까 합니다.
형사 하수영(전도연)은 불법을 자행하는 유흥업소의 뒤를 봐주면서 검은 돈을 챙긴 부패 경찰 중 한 명입니다. 경찰 월급으로는 꿈도 못 꿀 비싼 아파트를 장만한 수영은 같은 비리 경찰이자 연인인 임석용(이정재) 과장과 행복한 미래를 꿈꿉니다.
그러나 수영이 꼬리를 밟히면서 모든 게 산산조각납니다. 협박에 가까운 회유 끝에 수영은 자신이 모든 걸 뒤집어쓰고 감옥에 갔다 오기로 합니다. 대신 뒤가 구린 투자회사 ‘이스턴 프로미스’로부터 ‘출소하면 제대로 보상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약속을 굳게 믿고 2년 뒤 출소한 수영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됩니다. 보상을 약속한 이들은 자취를 감췄고 석용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이제 수영은 자신의 몫을 되찾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이스턴 프로미스를 상대합니다.
깔끔한 연출과 명연기, 그리고 음악
‘리볼버’는 2015년 개봉한 ‘무뢰한’으로 만났던 오승욱 감독과 배우 전도연이 약 10년 만에 재회한 작품입니다. 약속된 돈을 받아내기 위해 온갖 위험을 감수하고 직진 또 직진하는 수영의 저돌성과, 그런 수영을 둘러싼 인물들의 암투와 수싸움이 핵심적인 관람 포인트입니다.
영화 좀 봤다는 사람들은 극 중 빌런 조직으로 등장하는 이스턴 프로미스를 듣자마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범죄 영화 ‘이스턴 프라미스’(2008)가 떠올랐을 겁니다. 오 감독은 이 수위 높은 마피아 느와르물처럼 인물들 간의 대립 구도로 긴장감을 끌어올리려 합니다.
이런 긴장감은 배우들의 명연기 덕에 자연스레 연출됩니다. 전도연의 연기는 과연 압도적입니다. 전도연은 시종일관 냉정하고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지만, 눈빛으로는 배신감으로 인한 분노와 상실감을 표현합니다. 캐릭터의 개성을 강화하는 직설적인 화법과 과감한 실행력도 전도연 특유의 시크한 이미지와 잘 들어맞습니다.
극 중 수영은 이스턴 프로미스의 이사이자 영화의 메인 빌런인 앤디(지창욱), 한때 가까웠지만 껄끄러운 사이인 현직 형사 동호(김준한) 등 일부 인물과 대립각을 세웁니다. 반면 윤선(임지연)과의 관계는 독특합니다. 윤선은 기본적으로 철저히 돈과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이기적인 인물이지만, 푼수 같고 인간적인 면모도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입니다. 냉정할 때는 전도연 못지않게 냉정하다가도 뜬금없이 기분이 ‘업’ 되기도 하는 온도 차가 매력적입니다. 이런 캐릭터는 작위적인 느낌이 나기 쉬운데, 임지연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대단한 연기를 펼쳤습니다. 임지연 스스로도 현장에서 연기를 하며 “마치 알을 깨고 나온 기분”이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수영과 윤선이 케미스트리(조화)를 일으키면서 만들어지는 여성 서사도 반갑습니다.
조연들도 밀리지 않습니다. ‘본부장’을 연기한 김종수와 ‘조 사장’ 역의 정만식이 캐릭터에 딱 맞는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이정재, 정재영, 전혜진 등 특별출연도 빈틈이 없습니다. 특히 이정재와 전도연이 연기 합을 펼치는 장면은 몰입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를 살리는 연출은 군더더기 없습니다. 필요할 때 클로즈업이 들어가고, 필요할 정도로만 음악을 사용하는 절제미가 돋보입니다. 피아노와 현악기 위주의 배경음악이 분위기를 적절히 고조시켰는데, 아니나 다를까 국내 최고 수준인 조영욱 음악감독의 작품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음원을 다운로드 받고 싶었지만 찾을 수 없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또 의상을 포함한 미장센도 눈길을 끕니다.
의외로 웃음 타율도 높았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냉랭하고 무미건조한 하드보일드 스타일이지만, 이를 역이용해 진중한 순간에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합니다. 통통 튀는 윤선 캐릭터가 핵심 역할을 합니다. 기자가 영화를 관람할 당시 극장 안에 계셨던 어르신들도 웃음을 터트릴 정도로 세대를 아우르는 센스 있는 유머였습니다.
영화는 느와르 작품답게 긴장감을 통해 몰입을 유발합니다. 초반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해 약간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이야기가 단순하게 압축되면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인물들 간 수싸움과 갈등 구도가 펼쳐지면서 장르적 재미에도 충실했습니다.
싱거운 엔딩과 빈약한 스토리…관객 혹평 난무
이렇듯 관람 포인트가 많은 ‘리볼버’인데, 관객 평은 왜 이리 나쁠까요. 일단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아쉬운 점은 힘 빠지는 마무리입니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하면서 별다른 임팩트 없는 결말이 허무하게 느껴진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전개가 느리다는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느린 호흡의 영화에도 익숙한 기자 입장에서는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보통의 상업영화와 비교하면 확실히 전개가 빠르진 않습니다. 인물 간 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액션의 비중이 낮아서인지 ‘뜸을 많이 들여 답답하다’는 취지의 지적이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인물 서사가 아쉽다는 비판에는 기자도 적극 공감합니다. 인물들의 과거 설명이 생략돼 감정 이입이 쉽지 않고, 인물들 행동에 개연성이 결여된 부분도 있습니다. 또 극 초반엔 누가 누구인지 분별이 어려울 정도로 여러 인물이 등장해 산만하다는 느낌입니다.
평면적인 캐릭터 설정도 아쉽습니다. 수영은 페이소스(연민)를 불러일으킬 요소가 있는 캐릭터인데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아 그저 돈만 좇는 1차원적인 인물이 됐습니다.
메인 빌런인 앤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한국 영화에 등장했던 폭력적인 사이코패스 악당이라는 설정인데 존재감이 약합니다. ‘찌질함’을 한 스푼 더해 나름의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빌런의 매력은 반감되고 극의 무게감도 떨어지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악역임을 강조하는 듯 마구 내뱉는 욕설은 듣기 거북하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비판도 쏟아집니다. 결국 ‘떼인 돈 받으러 다니는’ 이야기라는 지적입니다. 다양한 인물을 엮어 복잡하게 흘러가는 듯 하지만 결국 전체적인 플롯은 단조롭다는 게 약점입니다.
‘리볼버’는 장단이 명확한 작품입니다. 기자는 재미있게 관람했는데, 관객의 평가는 냉혹하기 그지없어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한껏 절제된 하드보일드 스타일에 훌륭한 음악, 그리고 전도연과 임지연의 명품 연기를 보는 맛으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2% 부족한 작품이라는데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 혹평은 과한 것 같다는 나름의 소신 발언을 사족으로 덧붙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