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들이 직접 글을 쓰고 제작에 참여해 만든 무장애 그림 동화책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전망)가 나왔다. 이 동화책은 노랑나비의 날갯짓으로 태어난 ‘아기바람’이 자갈치시장, 황령산, 낙동강, 다대포 등 부산 곳곳을 돌아다니다 바다 친구에게 도착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책 뒤편에는 이 동화를 쓴 부산맹학교 특수교사인 박춘봉 씨 외에도 김영수, 김진아, 마성환, 박기진, 이경미, 차건우 씨가 공동 참여로 이름을 올려놓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마침 2일 부산 연제구 부산인권플랫폼 파랑에서 이들이 모인다고 해서 찾아갔다. 알고 보니 시각장애인 참여자들이 일반 도서에 비해 제작비가 비싼 점자책을 제작하기 위해 직접 점자 라벨 부착 작업을 하는 날이었다. 좀 더 저렴하게 만들어 점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과 단체에 한 부라도 더 많이 배포하자는 취지였다. 몇 시간이 걸리는 단순 반복 작업에 참가자들이 힘들어하자 박기진 씨가 “힘들지만 점자를 붙이면 젊어집니다. 점자, 점자, 젊어지자입니다”라고 해서 웃음이 터졌다.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림 동화책 외에도 이처럼 점자책과 저시력 시각장애인을 위한 큰 글씨 그림책으로도 만들어졌다. 또한 동화를 함께 만든 시각장애인 참여자들의 목소리로 직접 녹음한 오디오북과 영상북으로도 제작되어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게 했다. 온라인 콘텐츠는 배리어프리 문화예술단체인 유튜브 채널 ‘꿈꾸는 베프’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이 책은 ‘꿈꾸는베프’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장애문화예술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장벽 없는 동화 제작소’라는 이름으로 시각장애인 7명에 대한 동화 교육을 진행한 결과물이다. 교육 중 작성된 동화 7편 중 1편을 골라 시각장애인 참여자들이 함께 토론하고 고쳐 최종 원고를 만들었고, 한다혜 작가의 그림을 더해 그림 동화책으로 완성됐다는 것이다.
중심 저자인 박춘봉 씨는 “시각장애인으로서 어떻게 경험하고 어떻게 썼겠느냐는 측면보다 글이 좋아서 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시각장애가 있었다고 인정해 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동화 창작지도에 참여한 안덕자 동화작가는 “시각장애인들과의 수업이 처음엔 걱정이 되었지만 기우였다. 이들은 명랑 쾌활하고 고도의 집중력을 지녀 오히려 내가 더 많이 배운 자리였다. 내 안에 있던 장벽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라고 말했다. 이 책의 출판기념회는 16일 오후 2시 어린이 책 전문 서점인 연제구의 ‘책과 아이들’에서 열린다. 글·사진=박종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