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군-하동군의회 전경. 김현우 기자
2년째 이어진 경남 하동군과 하동군의회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보건의료원 추진 과정에서 깊게 패인 갈등의 골이 2026년도 예산 대규모 삭감으로까지 이어지면서 피해를 군민들이 고스란히 입을 판이다.
18일 하동군 등에 따르면 하동군의회는 지난 15일 열린 본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수정가결했다. 군의회는 하동군이 제출한 6723억 원 중 301억 1467만 원을 삭감했다. 삭감된 전체 예산의 5% 수준이다. 조정된 단위 사업만 133개에 달한다.
삭감액이 가장 큰 건 하동군과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공동추진하기로 한 고령자 복지주택 신축사업(53억 원)이다. 하동공설시장 재개발 정비사업(30억 원)도 전액 삭감됐다.
군의회는 예산 삭감 이유로 사업의 시급성과 실효성 부족, 주민 여론 수렴 미흡, 구체적인 추진 근거 및 집행계획 부재 등을 들었다.
전례를 찾기 힘든 예산 삭감에 하동군은 곧바로 입장문까지 내고 “60만 원 소액부터 최대 53억 원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사업이 구체적 사유 설명이나 대안 제시, 집행부와의 충분한 소통 없이 삭감됐다”고 비난했다.
현직인 하승철 군수 공약이 다수 포함된 이번 예산 삭감의 배경은 하 군수와 군의회의 해묵은 갈등으로 풀이된다.
하 군수와 군의회는 지난해 민선 8기 핵심 공약인 보건의료원 건립을 놓고 한 차례 충돌했다. 하 군수와 하동군이 지역을 전담할 의료원 건립을 추진하려 했지만 군의회가 막대한 적자와 재정 부담을 우려하며 이를 막아섰다.
결국 군의회가 의료원 설계비를 전액 삭감하자 군수는 군의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여기에 최근 예산 심의와 행정 절차를 둘러싸고 양측의 갈등은 한층 더 격화됐다.
지난 3일 군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제2차 회의가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이날 심의 대상 부서의 공무원들이 보건의료원 기공식 참석을 사유로 무더기로 불참한 것이다.
심의 대상이 사라져 심의가 파행되자 군의회는 ‘군청이 군의회를 경시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군의회 측은 “예산심의는 관계 공무원만 참석해도 진행할 수 있는데 담당자 전원이 일방적으로 불참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며 “예산심의 일정이 한 달 전에 통보됐는데 집행부는 심의 전날인 2일 일방적으로 일정 변경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왔다”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하동군은 오히려 군의회가 집행부의 일정 조율을 받아들이지 않고 비합리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반박했다. 하동군 관계자는 “앞서 하동군의회 의장이 기공식 일정에 동의했는데, 행사 참여 요청과 1시간 연기를 요청하는 군청의 부탁을 완강히 거부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하동군과 군의회가 2년 가까이 예산과 행정 절차를 놓고 정면충돌하는 모습에 지역 주민의 아쉬움이 커지고 있다. 100개도 넘는 하동군 사업이 무더기로 칼질 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애꿎은 군민에게 돌아가게 된 상황이다.
하동군 진교면 주민인 한 모 씨는 “먹고 살기가 정말 힘든 시기인데 주요 사업들에 대한 예산이 삭감됐다는 말을 들었다”라며 “협력해도 모자랄 상황에 계속 대립하고 있는 군과 군의회에 이게 과연 누굴 위한 정치인지 되묻고 싶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