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부 김진호 차장.
“협상의 본질은 사라지고 이기심만 남았다.”
삼성전자 임금협상이 또다시 멈춰 섰다. 노조가 성과급 명문화를 고집하면서다. 회사가 얼마를 벌든 일정 몫을 먼저 떼어가겠다는 과한 요구다. 성과에 따라 나누는 보상이 아니라 성과와 무관하게 몫을 고정하겠다는 발상이다. 이쯤 되면 협상이라기보다 분배를 선점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미래 투자 여력과 현재 보상의 균형이라는 임금협상의 본질은 사라지고, 현재의 몫을 먼저 확정하려는 이기적인 요구만 남았다.
문제는 성과급 자체가 아니다. 성과에 따라 달라지는 보상을 고정된 몫처럼 제도화하려는 방식이다. 성과급은 결과다. 많이 벌면 많이 가져가고, 덜 벌면 덜 가져가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노조 요구는 이 순서를 뒤집는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재원으로 떼고 상한을 없애며 사업부별 배분 기준까지 공식화하자는 것이다. 성과를 보기도 전에 몫부터 정해두는 구조다.
더 큰 문제는 산업의 성격이다. 반도체는 전형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수요와 가격, 투자 타이밍에 따라 실적은 크게 출렁이는 구조다. 이런 산업에서 보상 재원을 공식처럼 묶어두면 비용 구조는 크게 경직될 수밖에 없다. 호황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업황이 꺾이는 순간 그 부담은 투자 축소와 경쟁력 저하로 돌아온다. 노조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성과급을 지키겠다며 성과를 만드는 구조를 흔드는 셈이다.
시점도 좋지 않다. 인공지능(AI) 메모리 경쟁이 본격화된 국면이다. 경쟁사들이 투자 속도를 끌어올리는 상황에서 비용 구조를 묶어두는 선택은 격차를 키울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산업에서 한 번의 투자 지연은 몇 년의 차이로 이어진다. 단순히 ‘많이 벌었으니 많이 나누자’는 논리에 머물기에는 시장 환경이 지나치게 거칠다.
배분 방식 역시 왜곡을 키운다. 노조안은 재원의 40%를 균등 배분하고 60%를 사업부 성과에 연동하되, 적자 사업부에는 낮은 지급률을 적용하는 구조다. 결과는 분명하다. 메모리 중심의 보상 집중이다. 시스템LSI와 파운드리는 불리해지고 사업부 간 격차는 더 벌어진다. 전사 보상 체계라기보다 특정 사업부의 이해만 관철하려는 이기심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노조의 ‘자기 모순’이기도 하다. 초기업 노조를 내세우지만 실제 요구는 회사 내부의 균열을 키운다. 직원을 대표하기 보다는 다수가 근무하는 특정 사업부의 힘으로 보상 공식을 굳히려는 모습은 전체를 위한 제도 개선과는 거리가 있다.
기회비용도 작지 않다. 임금 인상과 주거·출산 지원 확대 등 전 직원에게 적용될 수 있는 방안은 협상 중단과 함께 뒤로 밀렸다. 회사가 먼저 내민 직원 보상 카드조차 성과급 명문화에 매달린 노조의 선택 앞에서 사실상 무력화됐다.
파업을 둘러싼 움직임 역시 우려를 키운다. 참여 여부를 공개하고 불참 시 불이익을 시사하는 방식은 자율적 참여를 가장한 사실상의 강제다. 정당한 수단일수록 목적과 맥락이 분명해야 한다. 특정 보상 공식을 밀어붙이기 위한 수단으로 읽히는 순간 명분은 약해진다.
노조의 요구는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미래보다 현재를 먼저 확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도체 산업에서 경쟁력은 투자에서 나온다. 투자 여력을 제약하는 구조 위에서 지속 가능한 보상은 존재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고정된 분배 공식이 아니다. 변동성을 감당하면서도 계속 투자하고, 계속 벌 수 있는 구조다. 특정 사업부의 이익이 아니라 회사 전체의 지속 가능성, 지금의 몫이 아니라 미래의 경쟁력을 함께 봐야 한다. 초기업을 말하려면 시야도 그에 걸맞아야 한다.
구조를 잃으면 성과급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