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소년심판’의 스틸컷. ‘소년심판’은 촉법소년 문제를 다뤄 화제를 모았다. 넷플릭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촉법소년 연령을 만 12세(현행 만 14세)로 하향하겠다고 공약했다. 법무부도 촉법소년 연령을 만 13세로 한 살 낮추는 ‘소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소년범의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네 곁에 있어 줄게> 공동 저자 중 한 사람인 사업가 반경민 씨도 처음에는 촉법소년들의 비행을 막기 위해 엄벌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청소년회복센터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더 나빠지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철없는 생각으로 저지른 범죄에 대해 옳지 않다고 말해 주는 어른도 그들 주변에는 별로 없었다. 매 맞는 일상을 살아온 소년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 아닐까. 반 씨는 누군가 주변의 한 사람이라도 비행 청소년에게 관심을 두고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 애정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창원지방법원 소년부 류기인 부장판사의 제안으로 소년부 참여관과 조사관, 청소년회복센터 센터장과 선생님들, 정신·심리전문가, 국선보조인 등 16명이 공동 저자로 참여해 만들어졌다. 소년보호재판의 실태를 알리고 보호소년에 대한 공동체적 관심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다. 창원지방법원 소년부는 보호소년 재비행률이 낮기로 유명한 곳이다.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각도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2022년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화제가 된 드라마 ‘소년심판’은 이처럼 실제로 우리 곁에 존재했다.
“갈 곳이 없으믄 받아야지요. 건물이 리모델링 중이지만 우짜든지 자리를 만들어서 아이를 받겠심미더.” 한 학생의 소문이 워낙 자자해 기관 중에서 받겠다는 곳이 없어서 골치였다. 건물 리모델링 중인 한 기관의 젊은 여성 실무자가 아이를 선뜻 받겠다고 했다. 조사관은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며 서둘러 쐐기를 박았다. 그 여성이 철없던 시절 창원지방법원 소년부에서 10호 처분(장기 소년원 송치)을 받았다는 사실은 뒤늦게 밝혀진다.
기관의 선생님들은 노래 실력이 수준급이던 그녀를 데리고 오디션을 보러 다닐 정도로 잘 보살펴 주었단다. 보호소년 출신의 아이가 잘 자라서 기관의 실무자가 되고, 다시 보호소년을 보살피는 드라마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다. 조사관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잘 자라 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늘 혼자라는 생각으로 두려움에 갇혀 살던 저희 곁을 묵묵히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으로 낳아 마음으로 키워 주신 당신들의 조건 없는 사랑이 헛되지 않도록, 비록 조금 느리지만 언젠가 세상에 꼭 베풀 수 있는 어른이 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한때의 비행소년은 사회복지사가 되었고, 당당하게 이름을 밝히고 이 책의 추천사를 썼다.
청소년 위탁 보호를 하다 힘들고 고통스러워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왜 없었을까. 그래도 “요서(여기서) 세끼 밥을 묵을 수 있어서 좋아요. 센터장님과 소장님이 밤마다 자라꼬 하는 잔소리도 좋고요”라는 소리를 들으면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익숙한 경상도 사투리가 책을 더욱 정겹게 만들어 준다. 배가 고파 편의점에서 과자 한 봉지를 훔쳐 법정까지 온 초등학교 5학년 아이 이야기도 나온다.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을 장발장이 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라면, 달걀, 김, 참치, 과자로 가득한 무거운 봉투를 들고 시설을 다시 찾아오는 아이들의 심정을 생각해 본다. 류기인 부장판사는 “지금도 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처벌 강화나 연령 하향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생각하실지 되묻고 싶다. 우리 사회에는 ‘곁’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은데,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다”라고 화두를 던진다. 한 아이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류기인 외 15인 지음/온기담북/312쪽/1만 8000원.
<네 곁에 있어 줄게>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