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점집에 신년운세를 보러 간다. 눈을 뜨면 운세 앱을 켜 오늘의 운세를 살핀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과의 궁합을 맞춰본다. 현대인에게 익숙한 무속의 풍경이다. 더운 여름을 맞아 납량특집을 준비했다. 너무 무서울까 걱정은 마시라. 귀신 이야기라면 이불부터 찾는 ‘어른이’는 물론 심약자도 볼 수 있는 순한 맛 공포물이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샤먼: 귀신전’은 총 8부작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다.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귀신과 무속을 주제로 다뤘다. 제작진은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간 귀신을 경험한 제보자 7명과 무속인 6명, 전문가 10여 명을 만나 무속 세계에 대해 탐구했다.
‘샤먼: 귀신전’의 초점은 귀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에 있지 않다. 원조 격 프로그램인 ‘전설의 고향’이나 ‘심야괴담회’ 등 귀신을 자극적으로 활용하지도 않는다. 귀신의 영향으로 현실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조명하고, 무속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제는 낡은 질문이 되어버린 ‘귀신을 믿느냐’에서 벗어나 ‘무속이 우리와 어떤 관련이 있느냐’에 집중했다.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귀신 이야기보다 이야기 이면에 드러나는 우리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에 있다. 프로그램은 우리 삶이 무속신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을 보여준다. ‘뒷전으로 미루다’, ‘신줏단지 모시듯 하다’와 같은 말이 대표적이다. 뒷전은 굿판에서 가장 마지막에 행하는 의식이다. 신에 대한 의식을 마치고 남은 음식으로 잡귀를 먹이는 것을 뒷전이라 하는데, 오늘날에는 중요하지 않은 일을 미룬다는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한다. 조상신을 모시는 단지인 신줏단지를 귀하게 여긴다는 뜻에서 쓰는 ‘신줏단지를 모시듯 하다’는 표현도 있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귀신 이야기다.
뒷전에서는 ‘정’(情)이라는 이름으로 요약되는 우리의 고유한 정서도 읽을 수 있다. 잡귀를 챙기는 것은 우리나라 샤먼(무당)만 하는 행동인데, 이때 무당들은 “당뇨에 간 귀, 혈압에 간 귀, 벼락 맞아 간 귀” 등을 일일이 호명하며 원혼을 달랜다. 화합을 추구하는 마음이 담긴 행동으로, 선과 악을 구분해 귀신을 ‘퇴치’하는 서양의 엑소시즘과는 다른 점이다.
귀신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일상의 소중함도 알게 된다. 다큐 속에 등장하는 제보자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고 호소한다. 그들이 겪은 아픔과 눈물은 절절한 모습으로 카메라에 담겨 안타까움을 더한다. 귀신을 보고 느끼는 것을 일종의 ‘능력’으로 여기며 부러워하던 이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올 만하다. 스크립터로 출연하는 유지태, 옥자현 배우의 역할이 미미한 점은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이 다큐는 지난 11일 첫 공개 이후 유료가입기여자수 1위를 기록했다. 다큐 자체의 흥미로움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현대인이 무속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국 오컬트를 다룬 영화 ‘파묘’의 흥행에 이어 무당이 등장하는 연애 프로그램까지 인기를 끈다. 무속을 다룬 프로그램의 특성상 결론은 ‘믿거나 말거나’를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무속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박찬경 감독의 영화 ‘만신’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