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실형을 산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8·15 광복절 복권 대상에 오르면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여권에서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복권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대통령 고유 권한을 침해하느냐’는 대통령실·친윤(친윤석열)계와 또 한번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친문(친문재인) 적자’인 김 전 지사의 컴백 가능성에 친명(친이재명)·비명(비이재명) 간 온도 차가 감지된다. 김 전 지사의 정치적 재기 여부가 민주당 내 이재명 독주 체제의 균열은 물론 차기 대권 구도와 긴밀하게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한 대표는 지난 10일 당 관계자를 통해 “민주주의 파괴 범죄를 반성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정치를 하라고 복권해 주는 것에 공감하지 못할 국민이 많을 것”이라고 복권 반대 입장을 밝혔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8일 사면심사위원회에서 김 전 지사 복권을 포함해 ‘광복절 특별사면 및 복권’ 대상자 명단을 결정했다. 광복절 특사·복권안은 13일 국무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김 전 지사는 드루킹 사건으로 2021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확정받은 뒤 2022년 12월 5개월 여의 잔여 형기 집행을 면제받았지만 복권되지는 않았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 대표의 반대 입장에 대해 “사면·복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아직 어떤 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 권한이라고 선을 그으며 한 대표의 입장 표명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여권 관계자는 11일 “2022년 12월 김 전 지사를 사면하기로 결정했고, 2024년 4월 총선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복권을 분리하기로 결정했다”며 이번 복권은 예정된 수순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이 13일 국무회의에서 김 전 지사의 복권을 재가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여권 일각에서는 한 대표가 또 한번의 당정 갈등을 감수하고 대통령실의 복권 움직임을 차기 대권 구도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의도로 보고 견제구를 날린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에서는 김 전 지사의 복권을 환영했지만, 계파별로 기류가 크게 엇갈리는 모습이다. 친명에 밀려 소수파가 된 친노(친노무현)·친문계는 비명계의 구심 역할을 할 수 있는 김 전 지사의 복권에 대해 “당의 다양성을 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크게 반겼다.
반면 친명계는 김 전 지사 복권을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재명 일극 체제’가 확고해진 상황이지만 이 전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가시화하는 등 상황 변화가 생기면 김 전 지사가 대안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앞서 친명 좌장인 정성호 의원은 “(윤 대통령이)야권 분열용으로 사면 카드를 쓸 가능성이 많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전날 열린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경기 지역 경선에서도 김두관 대표 후보가 김 전 지사를 잠재적 대권 주자로 거론하자 친명 위주인 당원들은 거센 야유를 보내기도 했다.
친명계가 김 전 지사의 복권을 견제한다는 시각이 확산되자, 이 전 대표는 지난 4월 윤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복권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지만 여권에서는 이를 부인했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만남에서 김 전 지사 복권은 전혀 거론된 바 없다”고 밝혔다. 영국을 거쳐 독일에 머물고 있는 김 전 지사는 연말에 귀국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 및 복권 대상자 명단에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조윤선·현기환 전 정무수석과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 원세훈 전 원장 등도 포함됐다.
조윤선 전 정무수석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받았다. 구속 기간에 형기를 모두 채운 그는 올해 2월 설 명절 특사 명단에서는 제외된 바 있다. 일명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복역한 현기환 전 정무수석,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도 명단에 올랐다. 최종적인 사면·복권 명단은 13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된다. 이번 특별사면은 윤석열 정부 들어 다섯 번째다.